-
삼성전자가 달라졌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비메모리 반도체 추격전에서 완패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테슬라에 이어 애플까지 고객사로 합류하며 순식간에 기류가 바뀌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엔비디아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협력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늘었다. 수년간 설움을 단숨에 털어내는 듯한 기세다. 예상 못 한 반전에 시장 반응도 어리둥절하다.
7일(현지시간) 애플은 보도자료를 내고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팹(Fab)에서 "아이폰을 포함한 애플 제품의 전력 효율과 성능을 최적화하는 칩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스틴팹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 14나노미터(nm) 성숙공정을 담당하고 있다. 업계에선 애플이 밝힌 양사 협력 분야가 IT 기기의 눈에 해당하는 이미지센서(CIS)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협력은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추가 일감을 따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평이다.
그간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에 쓰이는 CIS는 소니가 독점적으로 설계하고 생산해왔다. 아이폰 1대가 팔릴 때마다 소니 카메라 렌즈가 2~4개씩 팔려온 셈이고, 자연히 소니가 시장 절반가량을 독차지해왔다. 오스틴팹에서 애플의 신형 CIS를 생산한다는 건 소니의 독점 구조가 깨졌다는 뜻인 동시에 아이폰이 잘 팔릴수록 삼성전자가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팹리스(설계 전문)로서의 애플실리콘이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다시 찾게 됐다는 점도 함께 거론된다. 애플은 스마트폰 두뇌(AP)에선 이미 수년 전 내재화를 끝마쳤다. 현재는 모뎀과 CIS까지 직접 설계하면서 퀄컴, 소니로부터 독립을 꾀하고 있는데, 이를 생산할 파운드리 파트너로 TSMC가 아닌 삼성전자를 선택했다.
물론 CIS를 AP와 같은 고부가 로직 반도체와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애플이 직접 설계한 AP, M 시리즈는 여전히 TSMC가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고객사와 경쟁 관계인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파트너로 다시 채택됐다는 점에서 사업구조 전환의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객과 경쟁'하는 한계가 일부 해소된 장면이라는 얘기다.
테슬라 직후 애플까지 연달아 협력 소식을 전해진 점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지경학적 가치가 재평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스틴팹의 수주 사실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현지 공급망을 위한 추가 투자를 약속하며 밝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백악관 행사에서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지만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면 부과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자충수일 게 뻔한 관세 위협의 실제 목적이 첨단 제조업 리쇼어링이라고 알려준 것이다.
애플은 트럼프 대통령 남은 임기 동안 현지 공급망에 총 6000억달러(원화 약 830조원)을 쏟아붓겠다고 약속했다. 이 중 일부는 삼성전자 오스틴팹 몫이 됐다. TSMC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전략이 미국의 자국이익 우선주의 아래에서 뒤늦게 힘을 받는 모양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테슬라, 애플과 몇년 전부터 협력을 타진해오긴 했지만 관세에 공급망 재편 압박이 겹치면서 연달아 수주 소식이 전해진다"라며 "TSMC가 애리조나 팹 가동 시점에서 앞섰지만, CIS에선 삼성전자의 기존 생산 레퍼런스가 오히려 신뢰 요소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양사 모두 현지 신규팹을 꾸리는 과정에서 역량 차이가 일부 희석되지 않았을까 하는 낙관적 해석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대 불안요소로 꼽히던 파운드리가 성과를 내놓기 시작하자 투자업계에서도 얼떨떨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당장 메모리 경쟁력 회복이 급선무라 파운드리 추격전이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는 회의론이 작년부터 내부적으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모리는 물론 비메모리까지 동시다발로 희소식이 쏟아지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투자가들도 톤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5만원 선에서 바닥을 기던 주가는 이달 들어 7만원 선에 안착했다. 실적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파운드리 수주가 연달아 알려지며 투자심리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당장은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 등 거시경제 불확실성 문제로 삼성전자의 하반기 실적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들만 보면 내년 이후를 기대해 볼 만하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엔비디아 HBM 협력 확대나 테슬라, 애플과의 파운드리 협력 모두 실제 성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라며 "수년동안 줄곧 위기설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이렇게 좋아질 수도 있나, '우리 삼성전자가 달라졌어요'하는 반응이 많다"라고 전했다.
소니 대신 애플 CIS 진입…'고객과 경쟁' 한계도 일부 해소
美 관세 위협·공급망 압박에 파운드리 지경학 가치 재조명
최대 위기요인에서 큰손 협력 창구로 환골탈태한 비메모리
하반기 불확실성 여전해도 주가 7만원 안착…내년 기대감↑
美 관세 위협·공급망 압박에 파운드리 지경학 가치 재조명
최대 위기요인에서 큰손 협력 창구로 환골탈태한 비메모리
하반기 불확실성 여전해도 주가 7만원 안착…내년 기대감↑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8월 08일 15:1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