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 여천NCC 두고 한화-DL '네 탓' 공방전…진짜 갈등은 이제 시작?
입력 25.08.11 16:11
막판 3000억 지원 결정하며 급한불 껐지만 갈등은 이제 시작
JV 계약 만료 이후 NCC 공동지배 한계 여실히 드러냈단 평가
책임경영 유인 희박한데 실무자 사이 납사 공급가 둔 충돌까지
배임 우려·회수 난항 속 '밑 빠진 독' 지원 둔 갈등 계속될 전망
  •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여천NCC 문제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힌 끝에 추가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정부가 구조조정 밑그림을 그리는 때 여천NCC를 부도내기엔 양사 모두 정무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급한 불은 끄겠지만 얼마 안 가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거란 우려가 많다. 여천NCC 적자가 계속될 텐데 내년까지 조 단위 차입금 만기가 재차 돌아온다. 합작법인(JV) 계약이 종료되면서 양사 간 책임 전가, 본전 걱정, 출구전략이 계속해서 잡음을 일으킬 거란 전망이다. 

    DL케미칼은 11일 오전 9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여천NCC에 1500억원을 증자하거나 대여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DL그룹 역시 이날 오후 2시 이사회에서 같은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앞서 한화솔루션이 지난달 여천NCC에 대한 1500억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해둔 만큼 여천NCC는 채무불이행(디폴트) 불안을 덜게 됐다. 여천NCC는 이달 말까지 3100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증권사 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여천NCC가 부도날 경우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 일대는 물론 경쟁사 전반 조달까지 줄줄이 불똥이 튄다"라며 "정부가 질서 있는 구조조정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으면 한화나 DL그룹 모두 정무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적으로 추가 자금 지원이 결정됐지만 양사 충돌은 이제 막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구 대림산업)이 현물출자 방식으로 공동 설립한 납사분해설비(NCC) 기반 화학사다. 이후 26년째 양사가 50%씩 지분을 쥐고 공동으로 지배해왔다. 기초유분 등 업스트림 비중이 높은 사업 포트폴리오 상 수급이 꼬이고 시황이 악화한 지난 2022년부터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 초에도 양사가 각각 1000억원씩 총 2000억원의 증자에 나서기도 했다. 

    갈등은 증자 직후 추가로 3000억원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며 본격화했다. 한화그룹은 "어떻게든 신규 자금을 지원해 여천NCC를 회생시키겠다"는 입장이나 DL그룹은 "근본적인 원인부터 진단하고 자금 지원을 결정해야 한다"라며 맞선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문제로 동업자 간 의견이 갈린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천NCC식 합작법인(JV) 구조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란 목소리가 많다. 실제로 투자업계에서는 이번에 드러난 건 양사 갈등의 일부에 불과하고 여천NCC를 둘러싼 동상이몽이 갈수록 깊어질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양사의 JV 계약은 지난 연말 만료됐다. JV 계약이 만료되면 계약에 명시된 권리나 의무도 종료된다. 양사 JV에 담긴 주주간계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상 양자가 보유한 지분의 처분부터 공급계약 등에 대한 구속력 대부분이 사라진다. 각기 지분을 50%씩 보유한 일반주주로 돌아가게 되니 어느 한쪽이 사업을 개선하거나 구조조정에 나설 유인도 희박해진다.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JV 계약이 종료되고 나면 그냥 상법, 공정거래법 등 일반 법률에 따라 규율되는 공동지배 구조만 남게 된다"라며 "JV 계약 당사자 간 전략을 일치시킬 의무도 사라지고 원재료 공급 계약 등에 대한 의무도 없으니 이해충돌이 발생할 여지만 크게 늘어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등 양사 관계사와 여천NCC 사이 장기 공급·판매 계약도 작년 연말 모두 만료됐다. DL케미칼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올 들어 작년보다 20%가량 낮은 수준으로 여천NCC에서 납사를 구매해왔다. DL케미칼이 계약 만료 이후에도 같은 가격을 지불할 동안 한화솔루션만 구매가를 낮춰 여천NCC에 부담을 안겼다는 게 DL케미칼 측의 주장이다. DL케미칼은 한화솔루션이 싸게 구매해간 차액만큼을 여천NCC로 돌려놓으라 요구했지만 한화솔루션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한화그룹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시장 원칙에 따라 DL 측과 공급 조건의 세부적 조건에 대하여 1년 가까이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라며 "오히려 DL케미칼에 대한 저가공급 문제로 여천NCC가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추징액을 받았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추가 자금 지원 이전에 실무자 사이에서 납사 구매가격 차액 등 문제를 두고서도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이 두 번째 충돌일뿐 올 연말을 전후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도 일찌감치 거론된다. 

    여천NCC는 장부상 당기순손실을 지속하고 있지만 영업활동으로 1년에 1000억원 안팎 현금을 만들어내고는 있다. 그러나 4년째 적자를 지속하면서 늘어난 빛 대부분이 단기성 차입금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회사가 지불한 이자비용만 약 900억원에 달한다. 1년 이내에 돌아오는 차입금 만기만 1조원 이상으로 파악되는데, 현재와 같은 영업환경이 지속되면 재차 현금이 바닥날 수 있다. 

    투자업계에선 이런 식으로 자금 지원을 계속해 봤자 뾰족한 회수 방안이 없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여수 산단을 비롯한 업계 전체 생리를 고려하면 지원이 불가피하지만, 한화그룹이나 DL그룹으로선 배임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한화솔루션이 먼저 자금 지원을 결정하긴 했지만 한화솔루션 역시 재무사정이 빠듯하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2022년 적자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배당을 뽑아갔기 때문에 정리할 만한 마땅한 자산도 없고, 여수 산단 자체가 총대 멜 대기업이 없는 지역으로 통한다"라며 "연말 이후 또 돈이 마를텐데 계속해서 지원하는 게 근본적인 대책도 아니고, 양사 신경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