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위탁운용사 평가에 ‘사회적 책임’ 반영…PEF 운용 전략 변화 불가피
입력 25.08.12 07:00
정량평가 강화...PEF들 새로운 심사 기준에 촉각
사회적 책임 강화할 경우 국내 운용사 역차별 우려도
  • 국민연금이 사모투자(PE) 분야 위탁운용사 선정 기준에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투자’를 정식으로 포함시키며, PEF 업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수익률 중심의 투자에서 사회적 책임과 갈등관리 능력까지 요구되는 흐름으로 재편되면서, 국내 운용사들의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이달 1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2025년 기금운용계획 변경안’을 의결하고,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 시 평가기준을 전면 개편했다. 특히 정성평가 항목 강화가 이번 개정안의 핵심으로, 수익률뿐 아니라 운용사의 사회적 책임 이행 여부가 새로운 심사 기준으로 공식 반영됐다.

    새 기준에 따르면, 운용사 선정은 제안서 심사와 구술 평가를 50:50 비율로 가중해 합산하며, 제안서 내 정성(40점)·정량(60점) 항목으로 세분화된다. 구술 평가에서는 특히 ‘투자의사결정체계’ 항목이 10점 배점으로 도입되는데, 이 가운데 5점은 ‘사회적 기준·규범에 부합하는 투자 대상 선정 여부’로 평가된다.

    표면적으로는 5점 배점에 불과하지만, 이 항목이 위탁사 선정의 사실상 결정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 콘테스트에 참여하는 국내 주요 PEF 대부분이 정량지표(성과, 규모, 인력 구성 등)에서 이미 만점을 받는 만큼, 정성적 요소가 당락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PEF 관계자는 “정량은 사실상 만점이 기본”이라며 “이번 변경은 정성 평가로 운용사 간 순위가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라고 말했다.

    PEF 업계는 사회적 기준이 어떤 거래를 의미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당 기준이 노동갈등 유발, 지역사회 반발, ESG 미흡 투자 건 등을 의미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대표적 사례로는 홈플러스 매각 과정에서 제기된 노조와의 갈등이 꼽힌다.

    PEF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 불안을 유발하거나, 단기 수익 확보를 위해 자산을 조기에 매각하는 전략은 이제 ‘사회적 갈등 유발 투자’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PEF가 인수 후 2년 내 자산 매각을 통한 배당을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정책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 보호와 이사의 충실의무가 강화되면서, 상장사 거래는 소송 리스크가 커진 탓에 PEF들이 기피하는 거래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강화된 정성 기준이 국내 PEF에만 불균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 운용사에 비해 국내 운용사는 언론·정치·노동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운용사에겐 사회적 책임 요구가 강하지만, 외국계 운용사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럴 바엔 국민연금이 해외 위탁사에 투자 비중을 높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