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뭇매’ 맞은 산업은행…고민 깊어진 벤처투자
입력 25.08.19 07:00
감사원, 벤처투자 문제제기 및 징계 조치
5000억 직접 투자 단행하는데
담당자들 투자에 느끼는 부담 커져
100조 첨단산업기금과 투자영역도 중복 될 듯
  • 산업은행이 감사원 감사에서 벤처투자 회수 절차의 불투명성 지적과 함께 징계 조치를 받은 이후, 내부적으로 벤처 직접투자를 둘러싼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투자 수익이 난 사례조차 문제로 지적되면서 현장에서는 ‘리스크 회피’ 기류가 강해지고,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첨단산업기금과의 투자 영역 중복 가능성까지 겹쳐 전략 전반의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은 현재 내부 투자 시스템 관련, 매각 시점·방식 결정에 개인 판단이 개입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안을 검토 중이다.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다층화하거나 외부 검증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직접투자 집행 계획 자체는 변경할 수 없지만, 최대한 운용역 개인의 판단보다는 시스템의 판단에 따르게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지난 3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당시 감사원은 산업은행의 여신·구조조정·투자·대출 등 전반을 점검해 총 20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적발했다. 특히 벤처기업 투자자산 매각 과정에서의 불투명성을 문제 삼았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은은 2016년 5월 모 핀테크업체 주식을 취득했으나, 상장 등 투자 목적 달성 전인 2019년, 당시 담당 팀장이 연간 목표 실적 달성을 위해 비상장 주식을 서둘러 매각했다. 매각가는 주당 7810원. 이후 해당 기업은 2021년 상장에 성공하며 주가는 1만6000원까지 올랐다. 감사원은 이를 매각 요건 미충족 상태에서의 ‘저가 매도’로 판단, 매각 경위를 조사하고 비위 사실이 확인된 팀장에 대해 징계 및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번 조치 이후 산은 내부에서는 벤처 직접투자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급증했다는 지적이다. 올해 산은은 벤처투자 규모를 1조7000억원으로 설정했으며, 이 중 직접투자가 5250억원에 달한다. 직접투자는 소액·다건 구조가 많아 담당자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선에서는 “차라리 손실이 나더라도 문제 삼지 않는 편이 낫다”는 냉소가 돌고 있다. 감사원 감사는 위법 사항 적발 시 검찰 수사 이관 가능성이 있어, 징계가 곧 인사·경력 리스크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고민은 정책 중복 문제다. 산은은 정부의 핵심 아젠다인 ‘100조 첨단전략산업기금’ 조성을 주도하고 있다. 지원 대상은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방산, 백신, 로봇, 수소, 미래차, 인공지능(AI) 등으로, 현재 벤처투자의 주요 분야와 상당 부분 겹친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대규모 정책 펀드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산은의 별도 벤처 직접투자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 펀드 운용을 위한 별도의 본부급 조직이 따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보 공유 원칙와 중복 투자 위험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돼야 할 거란 평가다.

    현재 산은은 감사 리스크와 정책 중복 리스크라는 ‘투 트랙’ 부담 속에서, 벤처투자 구조와 목표를 전면 재설계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와중에 최고경영자인 회장 자리는 지난 6월 강석훈 전임 회장 퇴임 이후 두 달 넘게 비어있는 상황이라는 점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위원장이 13일 임명되는 등 인사에 속도가 붙고 있긴 하지만, 산업은행의 경우 차기 회장 관련 구체적인 하마평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민변 출신 금융감독원장이 등장하며, 산업은행에도 정부와 코드를 맞춘 '깜짝 인사'가 발탁될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투자 업무에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 이슈로 꼽힌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이 단순 절차 문제를 넘어 투자 전략 자체를 흔들고 있다”며 “정책 펀드와 벤처투자의 역할·범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투자 효율성은 물론, 내부 의사결정 안정성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