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여수 주목하는데…여천NCC로 얼굴 붉힌 한화·DL이 자구안 짜낼 수 있을까
입력 25.08.22 07:00
취재노트
정부 NCC 370만톤 감축 목표…시선 여수산단 여천NCC로
10년간 번 돈보다 더 챙겨가놓고 지원 필요하니 책임공방
'공동책임은 무책임' 한화·DL…정부 합격점 자구안 찾아낼까
  • 정부가 드디어 석유화학 구조조정 칼을 빼들었다. 20일 첫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국내 납사분해설비(NCC) 생산능력의 4분의 1인 370만톤을 감축하겠다고 목표치를 제시했다. 

    정부는 여수, 대산, 울산 3대 산업단지에 위치한 10개사가 십시일반으로 자율적 감축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마땅한 재편안을 짜오는 곳에만 패키지 지원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최대 370만톤이라는 수치에 이미 잠정 타깃이 포함돼 있을 거란 분석이 많다. ▲공급과잉이 가장 극심한 지역에서 ▲가동한지 오래됐고, ▲기초·범용 외에 다운스트림 연계 포트폴리오가 부족한 데다 ▲재무가 취약해 고정비 부담을 시급히 줄여야만 하는 곳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위 조건을 골고루 충족하는 대표적인 곳이 여수의 여천NCC다.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설립한 합작법인(JV)이다. 여수는 에틸렌 생산능력 기준 국내 최대 산단으로 수년 전부터 구조조정을 피해 갈 수 없는 지역으로 지목돼 왔다. 여천NCC의 생산능력은 약 228만톤, 여수 산단 3분의 1에 해당한다. 매출 90% 이상이 업스트림에 편중돼 있다. 더군다나 정부 대책 발표 직전에 유동성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이미 업계 안팎에선 370만톤 감축 목표에 여천NCC 공장들을 포함해 계산하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문제는 한화와 DL그룹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공동책임은 무책임이라더니 부도 코앞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기업들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고통을 분담할까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실제로 양사는 올 초부터 여천NCC 곳간을 채우는 문제로 얼굴을 붉혀온 것으로 확인된다. 누가 납사를 얼마에 받아 갔느냐 잡음은 사실 부차적이었다. 어느 한 곳이 수개월 납사를 싸게 받아 갔다고 갑자기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진 않는다. 양사가 지난 수십년 여천NCC가 벌어온 현금을 탈탈 털어 곳간을 텅 비우고 문제를 방치하고 키웠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지난해 6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여천NCC의 기말 현금 보유량은 8300만원이었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가 2조원을 향해가는데 현금이 마른 것이다. 직전 연말 현금 보유량도 8700만원,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상적인 기업체였다면 어떻게든 미리 곳간을 채우려 했겠지만 한화와 DL그룹은 올 들어 임시변통할 자금만 조금씩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달 들어선 장외 여론전에 돌입했다. 

    증권사 화학 담당 한 연구원은 "여천NCC는 여전히 가동률만 올라오면 상각전영업익(EBITDA) 기준으로는 흑자를 낼 수 있는 회사"라며 "업황이 어려워도 현금흐름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어야 했다. 근데 번 돈을 배당으로 다 쓰고 단기자금에 의존하다 보니 이제는 이자, 원금 상환 일정도 못 맞추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여천NCC는 2022년 적자로 돌아서기 직전까지 10년 이상 매해 순이익을 초과하는 현금배당을 쏟아냈다. 2017년 일시 유보한 것을 제외하면 많게는 벌어들인 돈의 2배를 훌쩍 넘겨 한화와 DL로 현금을 쏘아 올렸다. LG화학이나 롯데케미칼 등 우량한 경쟁사들의 배당성향도 대체로 30% 안팎 선이다. 호황기에도 50%를 넘기는 경우는 없었다. 적자 직전까지 여천NCC는 평균 배당성향 100% 이상을 유지했다. 

    불황기 실적 부진이 불가피한 석유화학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양사가 사실상 경영실패를 방조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전방 경기나 납사 가격, 환율은 수시로 변한다. 상식적으로 호황기에 벌어들인 돈 일부는 회사에 남겨서 불황기 적자를 감당하고 가동률을 조정할 수 있게끔 현금이나 차입 여력을 확보해뒀어야 했다. 투자업계에선 아무리 신사업 투자나 대규모 증설 계획이 없었다 해도 100%에 달하는 배당성향을 유지한 것 자체가 '모럴해저드'라고 입을 모은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JV니까 어느 한곳이 반대하면 배당이 불가하다. 양사가 한마음 한뜻으로 유보하지 말고 현금을 빼가자고 합의한 셈이다"라며 "기업가치나 재무 완충력 관리보다는 한화솔루션, DL케미칼 실적에 반영하고 현금을 창출하는 수단으로만 쓴 거니까 절대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는 최근 두 번째 수혈을 나섰지만 투자업계에선 조만간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1조원 규모 단기차입금을 감안하면 이번 지원 역시 임시변통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더 지원에 적극적이냐를 둔 신경전 역시 부차적 문제에 그쳤던 정황으로 풀이된다. 이마저도 정부나 지역사회 눈총이 없었다면 빨리 해결되기 어려웠을 거란 관전평이 많다. 

    JV 계약이 지난 연말 만료되며 여천NCC를 둘러싼 법적인 구속력 역시 약해진 상황으로 전해진다. 수년 전부터 업계에선 양사 모두 여천NCC에서 발을 뺄 궁리만 하고 있다는 관측이 오르내렸다. 한화솔루션이나 DL케미칼도 최근 재무사정이 나빠져 지원 여력이 그리 넉넉지 못하기도 하다. 배당받을 때나 뜻이 맞았지 위기가 터지니 서로 아쉬운 소리를 내세우는 양사가 어떻게 정부 입맛에 맞는 자구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