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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양대 발행사인 테더와 서클과 접촉하며 ‘가상자산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자 은행과 증권사들은 본격적인 사업화를 저울질하면서도 금융당국의 규제 기조를 의식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서클과 면담 일정을 진행 중이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들은 잇따라 히스 타버트 서클 글로벌 총괄사장을 직접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USDT 발행사 테더(점유율 62%)와 USDC 발행사 서클(25.7%)이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두 회사는 이미 글로벌 결제·송금 네트워크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국내 금융권이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접촉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시작되자 은행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사실상 예금 수신 기능을 대체할 경우, 은행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고유 기능을 뺏길 수 있는 상황에서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며 “인터넷은행 도입으로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까지 확산되면 본원적 경쟁력에 큰 도전이 된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외에도 금융권은 다양한 가상자산 금융상품 도입을 타진 중이다. 미국에서는 JP모건을 비롯한 주요 은행들이 비트코인을 담보로 한 대출 상품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블랙록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해 시장을 확대했다.
기관 투자자들도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자산’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웹3 전문 리서치 기관 타이거리서치는 “기관들이 비트코인을 담보·예치·스테이킹 등 전통 금융모델에 접목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은행들도 비트코인 담보대출은 기술적으로 주식담보대출과 유사해 규제만 허용된다면 어렵지 않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임원은 “육류담보대출 같은 비전통 담보보다 오히려 비트코인은 실시간 검증 가능성이 높다”며 도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증권사들 역시 내부적으로는 가상자산 기반 파생상품 출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비트코인 ETF 승인 흐름에 맞춰 차기 수익원 확보 차원의 준비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금융기관이 가상자산을 본격적인 투자자산으로 다루기에는 제도적 장벽이 여전히 높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집합투자기구를 통한 가상자산 편입을 허용하지 않고, 법인 보유 역시 명확히 금지돼 있다. 특금법(특정금융정보법)상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금융사는 사실상 거래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본규제도 걸림돌이다. 가상자산은 ‘기타자산’으로 분류돼 위험가중치(RWA)가 전쟁 중인 국가의 채권과 유사한 수준으로 책정된다. 결국 금융권은 직접 투자 대신 해외 가상자산 보유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방식으로 우회 접근하고 있다.
국내외 블록체인 콘퍼런스에서도 제도 개선 필요성은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국내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한 행사에서 오상록 하이퍼리즘 대표는 “기업이 가상자산을 보유·거래할 수 없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법인 투자를 막는 근거도 불명확하고, 가상자산 현물 ETF가 출시된 세계 흐름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발행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원화 국제화와 개방이 병행되지 않으면 결제 수요만 존재하는 선불전자지급수단에 불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규제 완화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금융권은 ‘공식적으론 조심스럽지만, 내부적으론 빠르게 움직인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블록체인 관련 행사에서 주요 시중은행과 증권사 임원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여부와 규제 개편이 금융권 가상자산 전략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코인 곁눈질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본격화
은행·증권사 물밑 행보
규제 리스크 해소가 분수령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본격화
은행·증권사 물밑 행보
규제 리스크 해소가 분수령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8월 22일 14:3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