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연금계좌로는 미래에셋 리츠ETF 못 산다?...이해상충 규제의 역설
입력 25.08.25 07:00
퇴직연금 규정 따라 IRP 계좌서 계열사 발행 리츠 ETF 투자 불가
같은 '리츠 ETF'라도 분류 따라 투자 가능 여부 달라 '투자자 혼란'
업계 "실효성 낮은 규제로 시장 다양성 제약…제도 개선 필요"
  • 부동산투자회사(리츠;REIT's)형 상장지수펀드(ETF)를 둘러싼 퇴직연금 운용 규제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현행 규정상 특정 증권사의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에서는 계열 운용사가 발행한 리츠 ETF에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리츠 ETF'라도 분류에 따라 일부는 편입이 가능하고 일부는 제한되는 등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는 물론, 운용업계에서도 실효성이 낮은 규제가 오히려 상품 투자 다양성을 가로막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1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최근 상장한 신규 리츠 ETF 2종(TIGER 리츠부동산인프라TOP10액티브, TIGER 리츠부동산인프라10채권혼합 액티브)은 미래에셋증권 IRP·DC 연금계좌에서 매수할 수 없다. 반면 삼성증권·KB증권 등 타사 증권사 계좌에서는 해당 상품의 거래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다양성'은 퇴직연금계좌 거래 기관을 선택하는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수직계열화가 완료돼있어, 계열사에서 내놓은 경쟁력있는 상품을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해 고객 풀(pool)을 늘리는 전략을 활용해왔다.

    계열사 상품을 담을 수 없는 까닭은 퇴직연금 감독규정 때문이다. 해당 규정 제11조 제2항 제4호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속한 계열사가 발행한 부동산집합투자기구에는 투자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동산집합투자기구'는 자본시장법 제229조 제2호에서 정의한 개념으로, 부동산·인프라 등 실물자산에 직접 투자해 수익을 내는 펀드 성격의 상품을 의미한다. 이번에 상장된 미래에셋 리츠 ETF 2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ETF가 상장 리츠 주식만 담으면 일반 주식형으로 분류돼 연금계좌 편입이 가능하다. 거래소에 상장된 리츠 종목을 그대로 사 모으는 구조여서 일반적인 주식형 ETF와 성격이 유사하다. 즉 같은 '리츠 ETF'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도, 부동산집합투자기구에 해당하면 편입이 금지되고, 일반 주식형은 허용되는 구조다. 법적 분류 차이가 투자자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감독원은 "계열사 고객의 연금 자금을 자사 펀드로 채우는 과정에서 시장 왜곡이나 이해상충이 생길 수 있다"며 "투자자 혼란은 크지 않고 연금계좌는 사업자가 투자 가능한 상품을 제한적으로 제시하는 구조"라고 해명했다.

    해당 규정은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규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회사의 경우 수직계열화로 인해 이해상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운용업계에서는 당국의 규제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본래 해당 규제는 운용사가 자기 계열 고객 자금으로 특정 부동산 펀드를 밀어주는 상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리츠 ETF는 외부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아 운용되는 경우가 많고 종목도 분산돼 있어 계열사 이익을 과도하게 반영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한 자산운용사 실무자는 "리츠 ETF는 장기 투자 성격이 강해 퇴직연금에 적합한 상품인데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투자가 불가능한 것은 자사 고객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며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려면 연금 자금의 투자상품 선택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제약은 시장 다양성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한 관계자도 "계열사 리츠 ETF 편입 제한은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 성격이 있다"며 "ETF 분류나 운용 과정에서 혼합형과 일반형 구분이 모호해 제한 적용이 일관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430조원을 돌파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안정적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리츠 ETF 수요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큰만큼, 단순한 계열사 제한보다는 투자자 선택권과 시장 다양성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특정 회사 문제가 아니라 계열사 규제와 리츠ETF 분류 체계가 맞물린 구조적 현상"이라며 "이해상충 방지 취지는 유지화되, 외부 지수 추종이나 공시 강화 등 조건을 달아 투자자 선택권을 넓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