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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국내 증권사 S&T(세일즈앤트레이딩) 부문은 일제히 호실적을 거뒀다. 글로벌 금리 인하 사이클에 올라타며 채권·파생 운용에서 평가이익이 발생했고, 조달비용 하락도 실적 개선을 뒷받침했다. 한국투자증권 운용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연말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실제로 대형 증권사 S&T 부문은 상반기 공통적으로 '채권 덕'을 봤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외부 환경 의존도가 컸던 만큼, 금융사고를 막고 안정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기 위한 '내재적 경쟁력'이 얼마나 갖춰져 있느냐가 하반기 성과를 가를 핵심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서 제기된다.
양해만 한국투자증권 운용그룹장은 "상반기 성과는 글로벌 금리 환경 변화라는 외부 요인의 영향이 컸다"며 "국내 채권에서는 이미 성과가 상당 부분 실현된 만큼, 이제는 글로벌 자산과 대체투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하 사이클에 올라탄 상반기 실적
한국투자증권 운용그룹은 상반기 4176억 원의 순익을 거두며 전년 동기(2640억 원) 대비 1.5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 증권업계 전반이 S&T 부문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한국투자증권은 규모 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금리 하락 국면에서 채권 보유분의 평가이익이 발생했고, 조달비용이 낮아지면서 운용 수익이 극대화된 덕분이다.
양 그룹장은 "금리가 빠르게 내려간 환경에서 국내 채권 포지션의 성과가 두드러졌다"며 "단순히 시장 환경뿐만 아니라, 크레딧 스프레드 축소나 RP 운용, 채권 파생 등 세부 부문별로도 안정적인 수익을 거뒀다"라고 말했다.
다만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같은 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투자증권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대형사 역시 채권 중심으로 호실적을 거뒀지만, 대부분이 '외부 환경에 기댄 성과'라는 점에서 하반기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양 그룹장은 "국내 금리는 사실상 박스권에 들어갔다"고 진단하며 "한국은행은 이미 경기 부양을 위해 완화적 기조를 상당 부분 반영했고, 물가·가계부채 등 구조적 제약 때문에 급격한 인하는 어려운 상황이라 국내 금리 인하는 속도 조절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조달 루트와 운용 구조
한국투자증권 운용그룹의 구조적 강점은 조달과 운용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발행어음, 환매조건부채권(RP),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사채(ELB)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30조 원 이상을 조달했고, 이를 기반으로 종합금융부문은 기업금융·대체투자, 채권파생부문은 금리·스프레드 변동성 대응 트레이딩을 수행한다.
양 그룹장은 "S&T는 단순히 트레이딩을 잘하는 것만으론 지속성이 없다. 조달과 운용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며 "기업금융이나 대체투자 역시 운용그룹의 조달 구조 안에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행어음으로 들어온 자금이 단기 유동성에 쓰이고, RP를 통한 조달은 금리 트레이딩이나 채권 헤지로 연결된다"며 "ELS·ELB 역시 파생부문만의 상품이 아니라, 전체 운용 포트폴리오 안에서 균형을 맞추는 자금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조달이 다양할수록 특정 시장 환경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채권 금리가 박스권에 들어가도, 기업금융이나 대체투자 쪽으로 유연하게 자금을 배분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고 강조했다.
하반기는 해외 채권·대체투자에 무게
하반기 전망은 상반기만큼 낙관적이지 않다. 양 그룹장은 "올해 실적 기여도로는 상반기 55, 하반기 45 정도를 본다"며 "종합금융업 진입 확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MA) 제도 시행 등으로 증권사 간 조달 경쟁이 심화하면서 비용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처럼 환경적 요인에 기대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운용그룹은 해외 채권과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해외 채권은 이미 전체 포트폴리오의 3분의 1 수준까지 늘려왔다. 미국 금리가 추가 하락할 경우 평가이익이 발생할 수 있고, 캐리 트레이드 환경이 개선된 점도 긍정적이다. "국내 금리 하락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글로벌 시장은 여전히 기회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그룹장은 "특히 미국의 경우 연준의 정책 변화 속도에 따라 하방 여력이 남아 있어 채권 투자 매력이 크다"라며 "대체투자 역시 단순히 리스크 분산 차원이 아니라, 안정적인 캐시플로를 확보하는 중요한 축이라 하반기에는 부동산·인프라 외에도 물류, 데이터센터 같은 구조화 자산에도 점진적으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소비 부진·유동성 과잉, 거시환경이 변수
다만 거시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국내 소비 성장은 2%대에 머물며 부진하지만, 무역흑자를 통해 시장에 유입되는 유동성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이는 부동산·주식 등 자본시장 과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양 그룹장은 "국내 금리는 사실상 추가 하락 여력이 크지 않은 반면, 미국은 3.7~4.5% 범위 내에서 추가 하락할 여지가 있다"며 "하반기 전략의 성패는 글로벌 자산에서 얼마나 기회를 선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한국 경제는 민간 소비가 둔화되고 있지만, 유동성은 계속 공급되는 불균형적 상황"이라며 "이런 환경에서는 단순히 금리 방향성에 베팅하기보다, 자산군별 상관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해 운용 전략을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그룹장은 또 "거시 변수는 언제든 방향이 바뀔 수 있다"며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성과보다는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해만 한국투자증권 운용그룹장 인터뷰]
채권 효과로 웃은 상반기 실적, 하반기엔 동력 약화 전망
하반기 키워드는 '글로벌'…해외 채권·대체투자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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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8월 2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