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흔들려도 돈 버는 힘, '플로우 비즈니스'와 '구조화'서 찾아야"
입력 25.08.27 07:00
[허필석 KB증권 트레이딩그룹장 인터뷰]
상반기, 시장 좋았지만 전략적 운용 성과도 뒷받침
하반기, 금리가 모든 자산군의 핵심 변수로 작용
꾸준한 수익 구조, 고객 플로우 기반 비즈니스에 방점
해외 IB처럼 국내 증권사도 구조화·복합상품 늘려야
  • 올해 상반기 증권사 S&T(세일즈앤드트레이딩) 부문은 우호적인 금리 환경에 힘입어 호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장 변동성에 크게 좌우되는 전통적인 트레이딩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에 일부 증권사들은 '플로우 비즈니스'와 '구조화 전략'을 새로운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

    허필석 KB증권 트레이딩그룹장은 "트레이딩만으로는 한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며 "일정 부분 세일즈와의 시너지가 필요하고, 고객 플로우에서 발생하는 흐름을 트레이딩과 연결시켜야 한다. 또 시장에 연동되지 않고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화 전략을 보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반기, 시장 좋았지만 전략적 운용 성과도 뒷받침

    KB증권의 상반기 S&T 부문은 주식·채권·대체자산에서 고르게 수익을 거뒀다. 상반기에만 약 236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0.6% 가까이 성장했다. 채권에서 가장 큰 수익을 거뒀고, 주식과 메자닌·비상장 투자 등 전략자산에서도 수익을 냈다. 이 밖에도 FX와 구조화채권, AI운용 등 제3 자산군도 실적에 기여했다.

    허 그룹장은 "상반기는 시장 자체가 좋았다. 금리도 내려오고, 주식시장도 새 정부 부양책 덕에 활기를 띠었다"며 "다만 단순히 시장 덕만 본 건 아니다. 채권처럼 꾸준히 이자가 쌓이는 구조, 예를 들어 차익거래·커버드콜 같은 전략을 본격적으로 키운 것이 성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은행 계열사 특성상 변동성이 큰 방향성 트레이딩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라는 요구가 많았고, 이에 맞춰 시장 중립형 전략과 구조화 상품 운용을 적극 보강했다"라고 덧붙였다.

    하반기, 금리가 모든 자산군의 핵심 변수

    하반기 시장 전망에 대해 신중론을 폈다. 상반기와 같은 급등세는 기대하기 어렵고, 특히 금리 방향성이 모든 자산군의 성과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허 그룹장은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뿐 아니라 주식·원자재·코인 등 위험자산 전반에 유동성이 공급된다. 9월 FOMC에서 50bp 인하 가능성이 열려 있고, 8월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의장의 멘트가 중요하다. 국내 금통위도 여기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잭슨홀 연설에서 비둘기파적 발언을 내놓으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파월 의장이 신중한 어조를 보이며 연내 인하 폭을 둘러싸고는 여전히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국채 발행 확대 가능성은 부담 요인이다. 그는 "국방비 증액 등으로 정부 재정 수요가 커지면 하반기 국채 발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기금리는 내려가겠지만 장기금리는 제한적이거나 오를 수도 있다"며 "이 경우 금리 커브 전략, 즉 단기물 비중을 늘리고 장기물 비중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경 집행이나 추가 발행은 단순히 금리 문제가 아니라, 채권 수급 전반을 흔들 수 있다. 하반기에는 금리 인하 기대와 국채 발행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시장이 혼재된 신호를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객 플로우 기반 비즈니스에 방점

    KB증권이 앞으로 주목하는 키워드는 '고객 플로우 기반 비즈니스'다. 이는 해외 IB가 변동성에 덜 흔들리고 꾸준히 이익을 낼 수 있는 핵심 원천으로 꼽히는 영역이다.

    허 그룹장은 "예를 들어 야간에 해외주식을 매매하려면 환전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FX 플로우, 즉 달러와 원화가 오가는 흐름을 통해 일정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다"며 "단순히 수수료만 남는 게 아니라, 그 자금을 바탕으로 짧은 트레이딩을 하면서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로우 비즈니스는 고객의 실제 거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환전·주식·채권 매매 흐름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변동성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성과를 내온 배경에도 이러한 모델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국내 증권사들 역시 체질 개선 차원에서 점차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해외 IB처럼 구조화·복합상품 늘려야

    그는 해외 IB와 국내 증권사의 차이를 가장 크게 가르는 대목으로 '구조화 트레이딩'을 꼽았다. 글로벌 IB들은 고객 플로우를 기반으로 구조화 상품을 대규모로 운용하며, 만기까지 일정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를 만든다. 반면 국내는 과거 손실 사례 이후 제약이 많아 단순 상품에만 머무르고 있다.

    허 그룹장은"구조화 상품을 발행해 연기금·공제회 같은 기관에 넘기면 발행 마진이 곧 확보된 수익이다. 예컨대 100짜리 상품을 102에 팔면 2만큼이 확정 이익이 된다. 국내에서는 RWA 부담 탓에 이런 상품 확대가 쉽지 않다. 메자닌 자산만 해도 하방이 막혀 있는 구조인데도 RWA가 400%다.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면 훨씬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시장은 여전히 구조화 상품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안전장치와 제도 개선이 병행된다면,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자동화, 당장 트레이딩 전면 대체는 어려울 것

    한편 최근 글로벌 금융권에서는 AI·알고리즘 트레이딩이 화두다. 다만 그는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장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과 같아, 일정한 모델을 만들더라도 결국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허 그룹장은 "AI 모듈이 매매를 수행한다 해도, 시장 환경이 바뀌면 파라미터를 계속 조정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틀을 짜고 관리하는 구조"라며 "코스피200 선물처럼 단순한 상품에는 AI가 통하겠지만, 복합 전략까지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도 소규모로 AI 트레이딩을 돌려 성과를 검증하고 있다.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확장할 계획"이라며 "AI는 트레이더를 대체한다기보다 보조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인력 유입 활발…S&T 여전히 매력적인 부서

    S&T 부문의 인력 수급과 조직 내 위상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자동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증권사 내에서 인기 있는 커리어 트랙이라는 것이다.

    허 그룹장은 "IB와 함께 S&T는 여전히 젊은 직원들이 선호하는 부서"라며 "특히 트레이딩을 직접 경험하며 성과를 내는 점에서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형사에서는 PSR(성과배분비율) 구조상 성과급이 수십억 원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 대형사는 제도상 낮지만, 안정성과 커리어 성장 측면에서 여전히 선호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시장의 흐름을 가장 빠르게 체감하는 곳이 S&T다. 금융시장의 맥을 짚고 전략을 세우는 경험을 쌓고 싶어하는 인력이 꾸준히 들어온다"며 S&T부문의 경쟁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