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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의 공모가 고평가 논란이 제도 개선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지난 7월 시행된 IPO 제도 개선안 도입의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방향성과 취지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구조적 관행과 투자자 행태가 맞물리며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불이 붙은 건 코로나19 사태 이후다. '양적완화'와 '공모주 붐'이 겹쳐지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금들이 기관, 개인 할 것 없이 IPO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플랫폼과 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초기부터 과도한 몸값이 형성됐고, 정부 주도의 벤처투자 자금 공급까지 맞물리며 밸류는 더욱 부풀려졌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수천억원대 가치를 요구하면 벤처캐피탈(VC)들조차 난색을 표하다가도 결국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펀드를 일정 기간 내에 집행해야 하는 현실적 제약 때문이다. 한 투자업계 실무자는 "매출과 점유율 지표만 확보되면 후속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며 "고평가라는 의문이 들더라도 결국 실제 밸류가 형성될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가 작동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상장 단계에서도 반복된다. 코스닥 신규 상장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적자 상태에서 시장에 입성했고, 미래 실적 추정 손익계산서를 근거로 공모가를 산정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수백 개 상장사 가운데 상장 당시 내놓은 추정치를 맞춘 기업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미래 실적을 근거로 한 손익계산서는 구조적으로 뻥튀기에 가깝다"며 "시장과 제도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말했다.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은 매출·이익·순자산 중 하나를 선택해 기업 가치 평가 모형을 정한다. 적자기업들 중 일부는 매출 기반 지표인 PSR(주가매출액비율)을 활용한다. 매출은 마케팅 비용 투입이나 일시적 손실 감수로 끌어올리기 쉬워 상장 직전 단기간에 실적을 부풀리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PSR을 택한 기업들 상당수는 상장 첫날 평균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데이원컴퍼니, 미트박스글로벌 등이 그 사례다. 기술특례상장 등 '미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적자기업 상장'이라는 코스닥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과도한 미래가치 산정이 결국 고평가 상장을 부추긴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투자자들의 행태도 고밸류 상장을 용인하는 요인이다. '기업가치가 과도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에이피알 등 인기 공모주에는 10조원대 청약 증거금이 몰린다. 더 많은 물량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확약을 거는 모습은 이율배반적 행태라는 해석이 나온다.
개편된 IPO 제도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 논의됐고, 지난달 시행됐다. 일단 단기 차익을 노린 허수성 청약을 줄이고 기업가치 기반 장기 투자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새 제도의 핵심은 기관투자자 배정 물량의 최소 40%를 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하도록 한 조항이다. 발행사와 주관사, 기관 모두 장기 보유 부담을 나누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일부 긍정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대한조선 등의 수요예측에서 절반 안팎의 기관이 의무보유 확약을 설정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올 하반기부터 제도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만큼,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패널티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규정상 확약 비율을 채우지 못할 경우 주관사가 부담하는 패널티는 공모물량의 1%에 그친다. 코스닥 평균 공모 규모가 300억~5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대형 증권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이런 와중에 하반기 최대어로 꼽히는 무신사 역시 PSR을 유력한 밸류에이션 툴로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최근의 주가순이익비율(PER)로는 언급되는 시가총액(10조원) 기준 배수가 140배에 달해, PSR 외에는 '성장성'을 반영할만한 지표가 없다는 것이다.
무신사가 예비 주관사단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PSR을 선택한다면, 제도 개선 이후 첫 PSR 활용 상장사가 된다. 증권가에서는 IPO 개선안이 실질적 효과가 있는지 판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로 여기는 분위기가 벌써부터 감돈다.
증권업계 한 실무자는 "IPO 신뢰 회복은 단순히 지표를 바꾸거나 선언적 제도 개편만으로는 어렵다"며 "주관사 패널티 강화, 기관 장기투자 문화 정착 등 실효성 있는 장치가 병행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고밸류 산정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취재노트
공모가 고평가 논란, 비상장부터 IPO 단계까지 구조적 거품 고착화
PSR 활용 기업, 상장 직후 주가 부진 반복…투자자도 이율배반적 행태
상장 개정안 "방향성은 긍정적" 평가…'패널티 실효성·신뢰 회복'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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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8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