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차환 부담 커진 석유화학사들…시험대 오른 '자체 신용도'
입력 25.09.04 07:00
단기 차환 압박에 유동성 리스크 우려
석유화학 합작사, 민평 대비 오버로 거래
"그룹의 지원 의지 또한 감안해야"
  • 석유화학 기업의 단기 차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연말까지 산업재편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시장성 차입금 해소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가운데, 계열의 지원가능성을 배제한 기업들의 자체 신용도와 차환 능력이 시장의 새로운 평가 잣대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금융권에 따르면 자율 협약에 참석하기로 한 석유화학 기업들의 금융권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총 32조10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은행권 대출은 16조원, 시장성 차입금은 16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특히 시장성 차입금은 회사채 14조원, 외화증권이 2조원 등으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특히 시장성 차입금 중 만기가 1년 이내에 도래하는 잔액만 5조3000억원에 달해 단기 차환 압박이 심하다. 주요 기업별로는 지난 6월 말 기준 1년 이내 만기 도래 시장성 차입금이 ▲한화솔루션 1조8250억원 ▲롯데케미칼 1조3800억원 ▲한화토탈에너지스 6500억원 ▲여천NCC 3350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당장 연말까지 자금시장에서 뚜렷한 신뢰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일부 기업은 유동성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책적 금융지원은 회사채 시장보다는 은행 대출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금융권과 석유화학 기업간 간담회에서 사업재편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기존 대출 회수를 자제하고, 협약에 따라 금융지원 신청 시 기존 여신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채권시장은 석유화학 기업을 중심으로 한 자금경색 우려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단기 자금시장에서 차환 압력이 커지면 은행권 지원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을 중심으로 스프레드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시장 불안이 확대되면 다른 취약 업종으로 전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시선은 기업의 '자체 신용도'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에는 모기업이나 계열 지원 가능성이 사실상 보강 요인으로 작용해, 합작사나 비우량사들도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 신뢰가 낮아지면서 기업 자체의 상환능력을 배제한 계열 보강 효과는 할인되는 분위기다. 특히 비우량채나 모회사 지원 여부가 불투명한 합작사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실제로 여천NCC, HD현대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등 석유화학 합작사들은 최근 장외시장에서 민평(민간채권평가사 평가금리) 금리 대비 오버금리로 거래되고 있다. 2일 기준 '여천NCC 84-2' 회사채는 장외시장에서 민평 금리 대비 77bp(베이시스포인트·1bp=0.01%포인트) 오버로 거래됐다. 금리가 높다는 건 그만큼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는 걸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날 'HD현대케미칼4-2'는 92bp 오버로, 한화토탈에너지스는 지난 19일 50bp 오버로 거래가 이뤄졌다.

    증권사 연구원은 "여천NCC처럼 대주주의 지원 이후 몇 달도 채 되지 않아 구조조정 가능성이 언급된 점은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라며 "이제는 그룹의 지원 능력뿐만 아니라 지원 의지 또한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채권운용역은 "상환에 이슈가 있는 기업들이 아니더라도 업황 불황의 깊이가 심해지다 보니 우려가 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단순한 신용등급보다도 유동성 지표, 차입 구조, 계열 분리 리스크 등 정성적 요소를 면밀히 따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