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서울대 82학번?' 7대 금투협회장 선거에 벌써 퍼진 '피로감'
입력 25.09.10 07:00
취재노트
정영채·박정림, 라임·옵티머스 2심 재판이 최대 걸림돌
황성엽 '사장단 회장' 입지, 결선 땐 중소형사 표심 변수
KB, 박정림·이현승 사이 선택 불가피…정일문 변수도 부상
서유석 연임 의지에도 전례 없어…정일문도 잠재 변수 평
  • 연말 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서울대 82학번'이 전면에 등장했다. 증권가를 비롯, 금융권 안팎에선 '언제까지 82학번이 다 할 것이냐'는 피로감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증권사 최고경영자 출신 82학번 동기들 사이의 이합집산과 이들이 현직일 당시 연루됐던 사모펀드 재판 결과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금투협회장 임기는 3년으로, 현직인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의 임기는 올해 12월31일까지다. 금융투자협회장은 증권사·자산운용사·선물사 등 400여 회원사를 대표하는 자리다. 금융당국과 소통하며 자본시장 제도 개선 과정에서 업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다. 명목상 협회장 선출이지만 실제로는 업계의 힘겨루기 무대이자, 회원사 간 이해관계가 집약되는 상징적 자리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금투협회장 선거는 '그들만의 잔치'로 진행돼왔다. 올해에는 다소 양상이 다르다. 임기 만료를 반 년 넘게 앞둔 올 상반기부터 '출마 후보'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 시절 금투협회가 업계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문책론'이 시발이긴 하지만, 증권가를 주름잡던 '서울대 82학번'들이 잇따라 차기 후보로 꼽히며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현재 서유석 현 협회장을 비롯해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 정영채 메리츠증권 고문, 이현승 전 KB자산운용 대표 등이 출마를 저울질하면서 열기를 더하고 있다. 

  •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 출신 트리오다. 황성엽·박정림·정영채 세 인물은 모두 동기생으로, 협회장 선거판의 중심에 서 있다. 업계 주요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덕에 무게감은 크지만, 피로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이 이미 60대에 접어든 만큼 50대 인사들로의 세대교체가 지연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 특수를 업은 82학번 CEO들은 한동안 ‘장수’의 아이콘이 됐다. 글로벌 양적완화로 증권사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자 이사회도 교체 명분을 찾지 않았다. 성과는 길어진 임기의 이유가 됐고, 그 사이 세대교체는 늦어졌다.

    후계자 육성의 빈자리도 문제다. 82학번 CEO들이 버티는 동안 차기 주자들은 성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인사 적체만 깊어졌다. 이제 와서 실적은 둔화되고 금융사고는 잦아지는데, 업계의 무게중심을 또다시 협회장 선거로 이어가려 한다는 점에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정영채 고문과 박정림 전 대표는 조만간 선고될 라임·옵티머스 사건 2심 결과에 따라 출마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박 전 대표는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정 고문도 같은 사건으로 문책경고를 받은 뒤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1심에선 모두 승소했지만, 금융위가 항소해 9~10월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출마 자격 논란은 불가피하다.

    정영채 고문은 IB 전문가로 꼽힌다. 대우증권과 NH투자증권을 거쳐 굵직한 기업금융 딜을 이끌었고, 당국과 소통 능력도 강점이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메리츠 증권 내부 IB 리빌딩 과정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만큼, 금투협회장 선거라는 새로운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냔 분석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리걸 리스크 해소 시 메리츠에서 부회장급 보직을 줄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현실화하진 않았다"며 "메리츠증권 합류 초기부터 정고문이 금투협회장을 염두에 둔 게 아니겠느냐는 평가가 적지 않았는데, 현재 가족의 반대로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정림 전 대표는 '여성 최초'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KB금융그룹 내 입지도 여전히 크지만, 경력 대부분을 은행에서 쌓았다는 점은 증권업계 표심을 끌어내는 데 약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제재 소송이라는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공식 출마 선언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황성엽 대표는 지난 5일 공식 출사표를 던졌다. 1963년생인 황 대표는 1987년 신영증권에 입사해 4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한 '정통 신영맨'이다. 동시에 신영증권 출신이라는 배경 탓에 대형사 표심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원사 분담금 비율에 따라 차등의결권이 적용되는 탓이다. 그럼에도 현재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금융투자사 23개사 사장단 모임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는 평가다. 대형사 단일화에 실패해 결선투표로 간다면, 중소형사 표 이동에 힘입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유석 현 협회장도 연임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협회장 연임 전례가 한 번도 없었다는 점, 미래에셋운용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증권업계 주류 표심을 얻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연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정림 전 대표의 서울대 경영학과 2년 후배인 이현승 전 KB자산운용 대표는 이미 공개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다만 같은 KB계열인 만큼, 같은 KB 계열인 만큼, 결국 박 전 대표와의 단일화 여부가 변수로 꼽힌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부회장도 잠재 변수로 거론된다. 단국대 경영학과 82학번 출신인 정 부회장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협회 회비를 가장 많이 내는 회사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현 협회장을 배출한 미래에셋에 맞서 한국투자가 후보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번 선거는 82학번 단일화와 재판 리스크라는 변수가 핵심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세대교체의 지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대교체가 늦어진 탓에 이제 바통을 이어받을 차기 주자들조차 50대 후반, 60대 초반에 몰려 있어서다. 내부에선 '낀세대'의 고충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뒤늦은 세대교체의 후폭풍이, 이번 협회장 선거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