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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ㆍ금융감독원ㆍ한국은행ㆍ한국거래소 등 핵심 금융 공공기관의 중간 허리 인력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중복 합격자를 줄이기 위해 매년 같은 날(10월 셋째주 토요일) 동시에 입사시험을 진행해 이른바 'A매치'라는 별명까지 붙은 핵심 금융 공공기관들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은 것이다.
과거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평생직장 개념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저연차와 허리층을 중심으로 퇴직자가 늘며 조직 운영 전반의 불안 요인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높은 입사 난이도에 비해 낮은 급여와 경직된 보상체계, 총액인건비 제약에 묶인 임금 인상률, 조직개편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산업은행은 2022년 부산 이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퇴직자가 급증했다. 2022년 97명, 2023년 87명이 회사를 떠나며 근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근 4년간 누적 퇴직자는 255명이며, 이 중 과장급 이하 실무자가 149명(58%)을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4~5급 퇴사자가 11명에 이른다. 허리층 공백이 심해지자 일부 부서에서는 행원·대리급이 과·차장 자리를 떠맡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산은은 2026년 공채 TO를 100명 가까이 늘렸지만, 구조적 유출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의 경우 만 3년차 미만 퇴직자는 2017~2021년 매년 5명 미만 수준에 그쳤지만, 2022년 6명, 지난해에는 18명으로 늘었다. 불과 5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5명이 회사를 떠났다. 전체 퇴직자 역시 2019년 73명에서 지난해 110명으로 확대됐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연봉 격차다. 금감원 공채 초봉은 4000만원대 중반에 머무는 반면 시중은행은 5000만원을 넘는다. 4급 이상 직원은 퇴직 후 3년간 금융사 재취업이 금지되는 공직자 규정도 있어,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커리어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2021년 이후 시중은행 평균 연봉이 한은을 추월하면서 중간연차 이탈이 늘었다. 특히 4~5급 조사역과 과장급 중심으로 빠져나가 내부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평균 연봉은 2020년 9800만원에서 2023년 1억1600만원으로 증가했지만, 한은은 같은 기간 1억60만원에서 1억740만원으로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다.
문제는 단순한 연봉 격차만이 아니다. 한은은 최근 몇 년간 중간 관리자 이탈과 함께 조직 규모가 확대되면서 신입 채용을 늘렸지만, 이 과정에서 인력 구조가 '항아리형'으로 변했다.
당장은 허리층 공백을 메우기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승진 대기 인원이 급격히 불어나 인사 적체가 심화돼 저연차 직원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승진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낮은 보상에 더해 경력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보니 조기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래소 역시 지난해 말부터 실무자 10명가량이 잇따라 퇴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시 관리 강화, 거래시간 연장 논의 등으로 업무 강도는 높아졌지만 보상은 제자리라는 게 내부 설명이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업무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데 총액인건비 제약으로 연봉이나 수당을 늘리기 어렵다"며 "주니어를 중심으로 사기가 떨어진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이탈 패턴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만 5년차 이하 직원의 퇴직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금융기관을 가리지 않고 매년 3~4명이 회사를 떠나는 수준으로 확산됐다. 로스쿨 진학, 회계사·변호사 등 전문직 전환이나 고액 연봉을 기대할 수 있는 가상자산업계·투자업계 진출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흐름은 결국 금융기관의 구조적 제약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매치 금융기관은 기획재정부 관리 아래 임금 인상률이 연평균 1~2%대에 머문다. 같은 기간 증권사는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억대 인센티브'가 심심찮게 나오고, 시중은행도 평균 5%대 인상률을 기록하며 격차가 더 커졌다.
조직 불확실성도 이탈을 부추겼다.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 논란, 금감원은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문제, 한은은 정책 독립성을 둘러싼 외부 압박과 인사 적체, 거래소는 잇따른 제도 개편과 업무 과중이 대표적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A매치'는 우리나라 주요 금융기관으로서 명예와 안정성을 동시에 상징했지만, 지금은 "연봉·업무강도·조직문화를 고려하면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냉소가 확산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저연차 조기 이탈, 허리층 붕괴, 전문직 자격증 보유자의 외부 전환이 겹치면서 조직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와 기관들은 공채 확대, 인사 제도 보완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총액인건비 제약과 구조적 한계가 존재하는 한 근본적 해법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민간 금융사와의 보상 격차가 커지고 조직문화까지 경직돼 있다면 더 이상 'A매치'라는 타이틀로 인재를 붙잡긴 어렵다"며 "주니어와 허리층 인력 유출은 금융공기관 전반의 가장 큰 리스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산은 등 'A매치' 금융기관, 주니어·허리급 이탈 가속화
연봉·보상 격차, 임금 인상 제약·조직 불확실성이 복합 요인
"더 이상 신의직장 아냐"…인재 이탈에 금융기관 '지속 가능성' 흔들
연봉·보상 격차, 임금 인상 제약·조직 불확실성이 복합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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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9월 0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