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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 사태로 최대 8조원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은행들은 수조원대 과징금 부담에 직면한 반면, 금융당국은 과징금 산정 기준과 감경 사유 설정에 따라 제재의 폭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업계에서는 감독당국이 사실상 '꽃놀이패'를 쥔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금융당국은 홍콩 H지수 연계 ELS 불완전판매 제재를 두고 과징금 산정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위반 행위에 대해 "해당 계약으로 얻은 수입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수입'을 어떻게 정의할지가 핵심이다. 은행이 ELS 판매로 얻은 수수료(5대 은행 합계 약 1800억원)가 기준이 될 수도 있고, 판매금액 전체(약 16조원)가 기준이 될 수도 있다.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이론상 최대 과징금은 8조원에 달한다.
업계 안팎에선 당국이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23년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과징금 산정 기준을 논의했으며, 투자자 피해 규모와 여론을 고려할 때 원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신한은행 중도금대출 관련 광고 위반 건에서 대출이자 대신 대출금 전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며 화제가 됐던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투자상품에 과징금이 처음 적용된 메리츠자산운용 사례도 참고가 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유튜브를 통해 무단 광고를 했다며 22억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무단 광고가 이뤄진 펀드 설정액 60억원이 기준이 됐다. 사실상 '투자원금'을 수입으로 본 셈이다. 이 전례는 은행권 과징금 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은행권의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조 단위 과징금이 확정되면 전액이 자본비율 산정에 반영되고, 과징금의 600%가 위험가중자산(RWA)으로 잡힌다. 예컨대 8조원의 과징금이 부과되면 48조원의 RWA가 추가되는 셈이다. 이 경우 기업대출이나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최근 시중은행들에 "감경 사유가 될 만한 근거를 제시해보라"는 취지로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징금을 줄이고 싶어하는 은행들을 통해 금융위가 정책 집행 과정에서 더 많은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다는 얘기다.
기준을 판매금액으로 잡으면 조 단위 과징금이 가능하고, 감경 사유를 다양하게 마련하면 은행들을 압박하면서도 재량권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감경 사유가 많을수록 금융당국의 재량권이 확대된다"며 "은행들은 부담을 덜 수 있고, 당국은 오히려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감독당국이 사실상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은행권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배드뱅크 출범, 교육세 인상, LTV 담합 과징금에 이어 홍콩 H지수 ELS 과징금까지 겹치며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하반기에는 금융권 인사 이슈가 추가로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금융권 인사에 당국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쳐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금융당국이 늘어난 재량권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업계의 관심사로 떠오른 배경이다.
특히 KB금융이 가장 분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은 홍콩 H지수 ELS를 8조원 이상 팔아 단일 은행 가운데 판매 규모가 가장 크다.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이 산정될 경우 최대 4조원 안팎의 부담이 예상된다. 업계에선 KB금융이 대형 로펌들을 다수 선임해 법리 검토와 대응 전략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이 KB금융"이라며 "과징금 규모가 크다 보니 내로라하는 로펌들을 총동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연말까지는 과징금 산정 기준이 확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제재안 사전통지서가 발송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과태료 부과 제척기간이 순차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불완전판매가 발생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는데, 홍콩 ELS는 2020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해 2021년에 집중됐다. 2020년 말 판매분은 올해 연말이면 제척기간에 걸린다. 이 시한을 넘길 경우 당국이 제재를 내려도 과태료 부과가 불가능하다. 결국 금융당국으로선 연내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취재노트
수조원 과징금 가능성…산정 기준 따라 은행권 부담 크게 갈려
금융당국, 감경 사유 의견 수렴…재량권 더 커질 전망
KB금융, 판매 규모 가장 커 대응책 마련에 총력
수조원 과징금 가능성…산정 기준 따라 은행권 부담 크게 갈려
금융당국, 감경 사유 의견 수렴…재량권 더 커질 전망
KB금융, 판매 규모 가장 커 대응책 마련에 총력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9월 0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