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보험이 없다"...'소비자 보호' 강조하는 금감원에 보험사들 '답답'
입력 25.09.12 07:00
금감원, 상품 심사·감독 강화 계획
출시단계별 책무배분 등 점검 예고
업계 "심사 허들 높아져 충격"
담보 경쟁력 사라지고 양극화 우려
  • 금융감독원이 보험상품의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보험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신상품의 소비자 보호 책임을 담당 임원에게 물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신상품 출시가 부담스러워졌다. 단기납 종신보험, 진단비 특약 등 주요 먹거리에 칼끝이 겨눠진 가운데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팔 보험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일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TF' 킥오프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주요 논의과제는 ▲소비자보호 중심의 내부통제 및 거버넌스 구축 ▲금융상품 출시단계별 책무 배분 등 금융회사 책임강화 ▲부적정한 금융상품에 대한 상품 심사 및 감독 강화 등이다.

    특히 보험사의 경우 상품 사전신고시 상품 관련 내부 의사결정 사항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이다. 상품 출시에 앞서 책임 있는 인물을 미리 파악하겠다는 의도에 보험사들이 크게 동요하는 모습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통상 보험상품은 구조에 문제가 없다면 출시 허용되고, 이후 부작용이 생기면 제재하는 식이었는데 이제 심사 단계부터 허들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심사 강화도 당황스러운데 신상품 출시에 담당임원과 내부 의사결정 내용까지 요구하는 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오는 11월까지 TF를 운영하고 과제별로 개선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금감원이 강하게 나선 건 최근 부임한 이찬진 원장이 연일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특정 보험과 담보를 콕 집어 지적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지난 1일 보험사 CEO들을 만나 "잘못된 보험상품 설계는 불완전판매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잘못된 설계된 예로는 높은 환급률로 중도 해지를 유도하는 종신보험, 치료비용보다 과도한 보험금이 지급되는 질병·상해보험을 들었다. 업계에선 '단기납 종신보험'과 '진단비 특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중도 해지 시 높은 해약환급률을 보장해 사실상 해지를 유도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진단비 특약의 경우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보험금을 높이면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

    금감원이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서면서 보험업계도 당장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당국이 눈여겨보는 상품에 대한 홍보를 자제하고, 설계사들의 영업 방식을 단속하는 식이다.

    KB라이프는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를 중단했던 'KB트리플레벨업 연금보험'을 재출시했지만, 언급을 꺼리고 있다. 당시 131.9%에 달하는 높은 환급률로 인기를 끈 만큼 '환급률'로 재차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KB라이프 관계자는 "상품을 재출시하기 전 판매 모집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오인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사전 점검하고 관리·교육하는 기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최근 많은 진단비로 주목을 받았던 하나생명 등도 영향권에 있다고 본다. 하나생명은 '하나로 누리는 건강보험'을 통해 골절 진단비를 150만원까지 끌어올렸다. 과거에는 20만~30만원이 보통이었고, 최근에는 50만원까지 보장하는 보험이 대부분이다.

    일각에선 이런 조치가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신상품 출시에 제약이 커지면 회사마다 상품이 비슷해지고, 상대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대형사에 고객이 몰릴 것이란 지적이다.

    한 중소보험사 관계자는 "단기납 종신보험은 당국의 계속된 감독으로 환급률이 안정화됐고, 진단비는 대형사와 차별화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라며 "대형사야 담보 경쟁이 없으면 손해율이 안정되는 장점이 있겠지만, 중소형사의 영업이 불가능해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상품 개발을 위한 인력이 현저히 부족한 터라 이대로라면 팔 상품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