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합병'도 노조에 발목…HD현대, 노란봉투법에 '골머리'
입력 25.09.16 07:26
노란봉투법 시행 후 첫 공동 전면 파업
임금문제 이어 현대重·미포 합병도 문제제기
양사 합병, 자본시장에선 긍정적 평가 잇따라
파업에 주주친화적 내러티브도 무색
  • HD현대중공업이 노조 파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조의 협상력이 높아지자 그룹의 조선 3사가 동시 파업에 나섰다. 노조 측은 회사가 추진 중인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HD현대 조선 3사(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조선·HD현대삼호중공업) 노동조합은 올해 임금 협상 난항을 이유로 공동 파업에 나섰다. 부분 파업이 아닌 전면 파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발 수위가 높아지며 노조원과 회사 측 경비요원이 충돌해 부상자까지 발생했다.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는 모습이다. 

    노조는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을 인상해 달라고 나섰다. 구체적으로는 ▲월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750%→900%) 인상 등을 요구했다. 이어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에 따른 직무 전환 배치 문제 ▲싱가포르 법인 설립 이후 예상되는 이익 배분 문제를 쟁점화했다. '마스가(MASGA) 프로젝트'로 위상이 높아진만큼 구성원들에게 마땅한 보상을 하란 입장이다. 

    HD현대의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들어서도 호실적을 이어갔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는데, 생산성 개선과 선종믹스 고도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회사는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생산성 개선이 조업일수 감소라는 계절적 불리함을 상쇄했다"며 "선박 인도가 앞당겨지며 고정비 분산효과도 커졌다"고 했다. 굉장히 고무적인 상황임을 수차례 강조하며 생산성 개선 효과를 치켜세웠다. 이러한 상황이 노조가 강경하게 나서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배경이 됐다. 인력 의존도가 높은 조선업 특성상 노동자들의 기여에 상응하는 보상을 내놓으라는 압박이다.

    추후 협상을 위해 노조 측이 무리한 요구들을 이어간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마스가를 계기로 조선소 노동자들의 영향력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는다. 

    노조는 임금 인상뿐 아니라 합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용불안정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HD현대그룹은 최근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를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고용을 보장하겠단 입장이지만, 노조 측에선 고용안정에 대한 '협약'을 맺자고 나섰다. 

    정부는 경영상 결정이 전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 밝혔지만 잡음이 생겨나는 모양새다. 

    그간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은 시장에선 꽤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랐다. 합병 비율이 자본시장법 내에서 무리 없이 산정된 데다, 양사 간 합병 시너지가 뚜렷하단 게 이유였다. 

    투자업계에선 HD현대그룹이 상법개정 등 주주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시장 흐름에 맞춰, 선제적으로 움직였단 이야기도 오르내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HD현대건설기계랑 HD현대인프라코어 합병 발표 당시 회사는 자사주 소각 계획 등도 함께 알렸는데 이게 주주친화적으로 비쳤다"며 "HD현대사이트솔루션 상장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 못 박자 정치권 반응이 긍정적이었고, 이번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추진됐단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양사 합병의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회사가 주주친화적 내러티브를 의도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비쳐졌다. 대기업들이 사업 부문을 쪼개 상장하는 것을 비판하는 여론 속에서, HD현대는 자회사들을 합쳐가는 그림이 연출됐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가 노조 파업으로 빠르게 묻힌 분위기다. 

    노조의 힘이 어디까지 확대될지가 시험대가 됐다. 노조의 쟁의 강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조선업계에선 HD현대가 노란봉투법의 파급효과를 정치권에 체감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관세 협상 과정에서 조선사들이 핵심적 역할을 맡았고,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보니 정부 역시 조선업 가동이 멈추는 상황을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처지여서다. 

    회사는 추석 전까지 노조와 협상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란 입장이다. 이미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임금 협상을 마무리한 점도 그룹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노조와의 원만한 협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