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PRS인데 셀다운 하지말라고?”…LG화학 요청에 증권사들 난색
입력 25.09.18 07:00
LG화학 최대 3조 PRS에도 셀다운 자제 요청에 증권가 곤란
"아예 외부 파는 건 몰라도, 유동화 형태는 참아달라"
자산유동화법 개정안부터 금융권 한도, 조달 관리 등 분석
신용리스크 대비 수수료 매력 낮은데…수익성 갖추기 힘든 요구
따라줄 의무 없어도 "LG그룹 요청 외면할 수 있겠느냐" 토로
  • LG화학은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주식으로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체결해 조 단위 자금 조달을 준비하고 있다. 대형 증권사들이 십시일반 나눠져야 할 만큼 규모가 큰데도 회사가 셀다운(Sell down)이나 유동화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주선기관들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수익성 좋은 거래로 보기는 힘든데, LG그룹 요청을 외면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현재 LG화학은 LG엔솔 주식으로 최대 3조원 규모의 PRS 체결을 앞두고 있다. 수개월 전부터 대형 증권사들이 앞다퉈 제안을 해온만큼 회사가 시점과 규모만 결정하면 거래가 성사되는 단계로 확인된다. 투자업계에선 LG화학이 이번 PRS로 LG엔솔 지배력을 80% 아래로 낮춰 최저한세 규제를 피하는 동시에 확보한 재원으로 주주환원 계획을 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대 규모의 PRS 거래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거래를 주선할 투자은행(IB)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은 듯하다. LG화학이 거래에 앞서 PRS 물량의 셀다운이나 유동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증권사들이 PRS로 확보한 LG엔솔 지분을 매각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상태다. 원래도 최저한세 규제를 피하자면 지분율을 낮춰야 했고, LG엔솔 유통주식 수가 지금보다 늘어나야 한다는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다. PRS 계약이 만료되면 지분을 되사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대신 회사가 조달할 자금을 최대한 북(book·운용한도)으로 소화해달라는 의중으로 파악된다. 앞서 비슷한 요청을 한 회사도 있었으나 규모나 회사 체급 면에서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고, 벌써 거래에서 이탈하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LG화학의 PRS 금리는 4~5%대에서 결정될텐데, 규모가 클 뿐이지 사실 그렇게 돈이 되는 거래는 아니다"라며 "대형 증권사들이 물량을 나눠 받는다고 해도 이만한 물량을 북(book·운용한도)에 담아둬야 한다면 정말 남는 게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주식 기반 PRS 계약을 주선한 증권사들은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기초자산을 인수하고 셀다운에 나선다. SPC를 통해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거나 자산유동화대출(ABL)을 일으켜 수익성을 보강하는 한편 다음 거래를 준비하는 식이다. PRS로 조달하려는 회사가 자체 신용 위험에 비해 낮은 수수료율을 고집할수록 유동화를 통해 장단기 금리 차이를 남기는 게 중요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PRS의 예상 수수료율 범위를 고려하면 회사의 희망사항이 과도하다는 평이 많다.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요구가 등장하는 배경을 두고 여러 분석이 오르내린다. 

    우선 2년 전 개정해 작년부터 시행한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 개정 문제가 지목된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실질적인 자금 조달 주체가 기초자산 부실 위험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게 '유동화증권 의무보유' 조항을 신설했다.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려면 기초자산을 양도한 자도 발행금액 5%를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 것이다. LG화학이 PRS를 체결해 3조원을 조달하더라도 증권사들이 유동화에 나선다면 1500억원은 유동화증권을 되사오는데 써야 하는 식이 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는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에서 시행사들의 에쿼티 비중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규제인데, 기업금융 업무에서도 구분 없이 적용된다"라며 "단순히 조달액 5%가 줄어드는 것 외에도 자금 관리 등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꺼려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전했다. 

    롯데나 SK 등 앞서 PRS를 적극 활용해온 사례들을 감안하면 완전히 수긍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LG화학에 비해 자금 사정이 시급했던 곳들도 같은 규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LG화학을 위시한 LG그룹의 금융권 위험노출액(익스포저) 관리를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PRS 물량을 은행 등 금융사들이 받아 가는 만큼 향후 회사가 대출이 필요할 때 한도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셀다운에 참여할 기관들이 잠재적인 회사채 투자자들이라는 점도 함께 거론된다. 시중에 풀린 PRS 물량의 수익성이 향후 발행할 회사채 금리보다 매력적이라면 조달 전략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배경이 무엇이든 증권업계에선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회사가 셀다운을 꺼려하는 의중은 PRS 계약에 반영될 수 없다. 계약에 담기면 PRS로 조달한 금액이 장부에 부채로 잡힐 가능성만 커져 오히려 LG화학에 불리해진다. 뒤집어 보면 증권사들이 요구를 따라야 할 법적인 이유도 없고 원한다면 셀다운을 해도 무방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관계를 내세운 은근한 압박을 과연 외면할 수 있겠느냐는 부담감도 분명히 존재한다. 실무자끼리 계약 조건을 협의하다 넌지시 찔러둔 요구가 회색지대에 있다 해도 안 따랐을 경우 향후 영업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심심찮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LG화학은 금융당국에서 주시해 온 증권사들의 회사채 캡티브 영업 문제에서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대형 증권사 한 커버리지 담당은 "대형 그룹사를 상대로 영업을 하려면 계약에 없어도 따라야 한다는 압박이 따를 수밖에 없다"라며 "문제는 이런 요구를 하나 둘 받아주기 시작하면 결국 다른 회사도 비슷한 요구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회사채 캡티브 영업도 비슷한 수순으로 확산했었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자회사 LG엔솔 지분을 전략적으로 활용 가능한 자산으로 보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