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번갈아 연고점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시장이 삼성전자를 달리 보기 시작하자 수년간 따로 놀던 양사 주가가 나란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향후 업황을 가늠할 지표들 모두 실적 경쟁을 부추기면서 국내외 투자가들도 때를 놓칠세라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한번 뒤집혔던 왕좌를 놓고 양자간 2차전이 예고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3년여 동안 SK하이닉스에 많은 것을 추월당했다. 2년 전 최악의 불황을 뚫고 가장 먼저 흑자로 돌아선 것도 SK하이닉스였고, 이후로 수익성, 시장 점유율, 매출액, 기술력까지 대부분 지표에서 순위가 뒤바뀌었다. 7월, 양사의 2분기 D램과 낸드 합산 매출액이 동률에 가깝게 집계되자 삼성의 재역전극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는 우울한 관전평까지 시장에 오르내렸다.
이달 들어 톤이 180도 뒤집히고 있다. 양사를 포함해 메모리 반도체 회사 모두에게 유리한 사업 환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자체적인 노력까지 순차로 결실을 맺고 있는 덕이다. 그간에도 삼성전자의 바닥을 점치는 목소리가 없진 않았으나, 갑자기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일치된 전망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들이 삼성전자의 내년 이익 전망을 55조원까지 끌어올리는 걸 두고 너무 낙관적이지 않은가 했는데 이제 외국계 투자은행(IB)도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라며 "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예상보다 빨리 올라가는 데다 이번 호황이 길어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라고 설명했다.
-
지금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호재는 범용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당장 늘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반도체 회사는 시장 수요 전망에 따라 캐파(Capacity)를 늘리거나 공정을 미세화하는 식으로 공급을 조절하는데, 지난 수년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시기가 지속됐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 학습에 필요한 제품 외에는 수요도 정체돼 있고 단위투자비는 갈수록 비싸지면서 업계가 한 몸으로 몸을 사려 왔기 때문이다. HBM 시장을 선점한 SK하이닉스만 큰돈을 번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연말을 전후해 범용 D램 수요가 살아날 거란 전망이 많았는데 이 시기가 9월로 앞당겨졌다. 전방 빅 테크들의 AI 투자가 HBM 외 추론, 일반 서버용 D램, 낸드로 확산하면서 공급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늘어난 것이다. 그간 업계의 투자비 대부분이 HBM 캐파에 집중돼 있었던 터라 내년까지는 범용 제품 공급을 늘리기 힘들다. 업계에선 이달 말 예정된 계약가 협상에서 많게는 20% 이상 가격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D램 공급이 부족하고 가격이 치솟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은 고공행진한다. 이런 상황이 극단적으로 펼쳐졌던 게 과거 2017~2018년 슈퍼사이클(초호황) 시기였다. 이번 호황이 당시처럼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는 평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사이클의 성격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양사 모두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노하우를 충분히 쌓았다는 분석이 많다. 자연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모두 사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실제로 투자업계에선 내년 상반기까지 메모리 가격이 꾸준히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 하에 이번 랠리가 얼마나 지속될지 따져보고 있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HBM 때는 SK하이닉스만 올랐지만 지금은 삼성전자를 포함해 모든 메모리 공급사 주가가 올라가는 동반 랠리"라며 "그중에서도 D램 시장을 과점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개선될 수밖에 없다. 주가가 언제, 어디까지 오를지가 관심인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둘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나 이번 호황을 거치며 양사 시장 지위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도 여러 분석이 오간다.
당장 삼성전자가 이목을 더 끌고는 있다. 2년간의 분투 끝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HBM 공급망 진입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덕이다. 현재 SK하이닉스의 성적표에는 이미 엔비디아 HBM 공급 실적이 충분히 반영돼 있지만 삼성전자 실적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적 미미한 편이다. HBM 수익성은 범용 D램의 5~7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제품 믹스에서 가장 수익성 뛰어난 품목이 비어 있었던 셈이다. 전체 업황이 나아지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차세대 HBM 공급을 점차로 늘린다면 실적 개선 속도도 더 가팔라지게 된다.
HBM에서 헤맨 기간이 길었던 만큼 삼성전자의 주가가 더 눌려 있기도 하다. 증권가에선 통상 반도체 기업가치를 평가할 때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사용한다. 그간 양사 주가는 PBR 기준 각각 1.8배, 1.3배 안팎에 형성돼 있었다. 아직은 SK하이닉스가 HBM이나 DDR5 등 고부가가치 D램 시장에서 앞서고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지표가 월등하다 해도 재평가 여지는 삼성전자에 더 많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반면 같은 논리로 SK하이닉스 역시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양사를 이어 D램 공급을 담당하는 3위 마이크론의 PBR 멀티플(배수)은 3.5배를 훌쩍 넘어간다. 각기 속한 시장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글로벌 투자가들이 메모리 반도체에 베팅하자면 1위 SK하이닉스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증권가에선 SK하이닉스가 이번 3분기를 기점으로 내년까지 분기 10조~12조원 안팎 영업이익을 꾸준히 거둬들이며 압도적인 수익성을 기록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파운드리(비메모리 위탁생산) 사업부가 대표적이다. 여전히 대만 TSMC와의 격차가 아득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나 미국 정부가 빅테크들의 자국 내 투자를 압박하며 낙숫물이 밀려들고 있다.
현지 투자를 늘려야 하는 테슬라와 애플, 퀄컴 등을 새 고객사로 맞이하면서 재평가 여지가 마련되는 형국이다. 당장 적자가 줄어드는 것만 해도 삼성전자 실적 회복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 내 빅테크와의 협력을 기점으로 비메모리 사업의 잠재 가치가 드러난다면 삼성전자의 주가나 시장 지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구간에 접어들 수 있다는 평이다.
IB 한 관계자는 "당장은 HBM이 많은 돈을 벌어도 결국은 엔비디아 독점지위 아래에서 마진을 나눠 받는 구조라 한계가 있다. 그러나 테슬라나 애플과의 협력은 새로운 칩 시장 개척의 일환"이라며 "그만큼 난도가 높아서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많지만, 삼성전자가 이런 일감을 계속 확보할수록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솟는 메모리 계약가…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이 오를 상황
내년까지 공급 달릴 가능성…시장선 랠리 얼마나 갈까 기대中
저평가 길었던 삼성전자, 메모리 호황에 HBM 진입까지 임박
SK하이닉스도 글로벌 대비 저평가지만 삼성 비메모리도 주목
내년까지 공급 달릴 가능성…시장선 랠리 얼마나 갈까 기대中
저평가 길었던 삼성전자, 메모리 호황에 HBM 진입까지 임박
SK하이닉스도 글로벌 대비 저평가지만 삼성 비메모리도 주목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09월 23일 16:1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