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넷플릭스 바람 속 미국 투자 확대하는 CJ ENM
입력 25.09.24 07:00
재무 압박 속 스카이댄스 파트너십 강화 방향
극장 침체로 '콘텐츠 제작' 중심 전환 불가피
스카이댄스 지분 일부 스튜디오드래곤에 이전
소수지분으로 할리우드 재편 속 기회 얻을까
  •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의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이 주도하는 할리우드 대재편 흐름 속에서 CJ ENM이 미국 사업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극장 사업 침체와 재무 압박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스카이댄스미디어(이하 스카이댄스)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J그룹의 미디어 사업 전략 변화는 필연적이다. CJ ENM은 올해 9월 21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고금리 차입금을 저금리로 차환하는 등 재무 부담 경감에 나서고 있다. 유동성 차입금 1조5600여억원에 비해 현금 보유액은 약 5500억원 수준으로, 자금 관리가 그룹 내에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CJ ENM은 올해 5월 보유 중인 스카이댄스 지분 1.74%(약 1152억원)를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에 이전했다. 표면적으로는 "전략적 역할 분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금 확보가 주된 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스튜디오드래곤 입장에서는 총자산의 12%에 해당하는 큰 부담이지만, CJ그룹 차원에서는 콘텐츠 제작 전문 자회사가 할리우드 파트너십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극장에서 콘텐츠 제작으로…할리우드 재편의 기회와 한계

    글로벌 극장업계가 전례 없는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가 합병을 추진하고 CJ CGV도 아시아법인 매각을 검토하는 등 업계 전반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CJ ENM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293억원으로 전년 대비 38.5%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부터 스카이댄스와 구축해온 파트너십은 더욱 중요해졌다. '호텔 델루나' 미국 TV 시리즈, 미드 '운명을 읽는 기계' 시즌 1, 2 등 실질적 협업 성과를 바탕으로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이 합쳐서 보유한 스카이댄스 지분율은 3.29%에 불과하지만, 이사회에 1명의 이사를 파견할 수 있는 권리와 상호간 우선매수권 약정을 통해 전략적 옵션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엘리슨의 워너브라더스 인수 시도가 구체화되면서 CJ ENM에는 기회 요인이 늘어나고 있다. 스카이댄스가 파라마운트+, HBO맥스,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를 모두 거느린 미디어 제국으로 성장한다면, CJ ENM도 더 큰 글로벌 파트너를 확보하는 셈이다.

    DC 슈퍼히어로,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등 글로벌 IP와 연계한 K-콘텐츠 제작이나 '사랑의 불시착' 등 CJ ENM 보유 IP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가능성도 열린다.

    물론 소수 지분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무리 파트너가 거대해져도 CJ ENM의 발언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파트너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자체적인 사업 역량 구축에는 소홀히 할 위험도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올해 4월 일본, 8월 미국, 9월 유럽까지 연이은 해외 현장경영을 통해 글로벌 확장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워싱턴DC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과 K-컬처를 논의하고, 런던에서는 "범유럽 톱티어 플레이어"를 목표로 제시하는 등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CJ ENM은 K-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회사채 발행에서 1600억원 모집에 9350억원 수요를 모으며 기존 5%대 고금리 차입금을 2%대 후반으로 차환했다. 시장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K-콘텐츠의 글로벌 인기를 일회성 모멘텀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캐시플로우로 전환하는 것이 관건이다.

    증권업계도 아직 CJ ENM의 스카이댄스 파트너십에 대해 신중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직접적 수혜에 대해서도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스튜디오드래곤이 스카이댄스 지분 2~3% 보유를 통한 협력 강화로 제작 물량이 소폭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반(反)넷플릭스 연대가 구성되더라도 주로 미주 지역에만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넷플릭스 독주 체제 속 생존 전략은 '파트너십'

    넷플릭스가 '극복 불가능한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CJ ENM의 전략은 직접 대결보다는 파트너십을 통한 생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피콕, 파라마운트+, 맥스, 나아가 티빙 등 각 미디어로는 BEP(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는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CJ ENM은 글로벌 플랫폼의 콘텐츠 수요 증가에 우수한 제작 역량을 제공하면서 자사 IP의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디어 M&A 규제 완화도 기회 요인이다. 파라마운트-스카이댄스 합병이 원활히 승인된 것처럼 추가 업계 재편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엘리슨의 워너브라더스 인수 시도가 올해 말까지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CJ ENM이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 전략적 기회를 실질적 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