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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지주가 과도한 자사주 보유 문제로 국정감사 증인석에 서게 된 가운데, 롯데의 사례가 대기업 자본정책의 방향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자사주 과다 보유가 저(低) PBR(주가순자산비율)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자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13일 열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 고정욱 롯데지주 사장이 출석할 예정이다. 고 사장은 이 자리에서 지분의 27.5%에 달하는 자사주 보유 경위와 향후 처리 방안 등을 소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지주의 자사주 보유 비중은 50대 그룹사 가운데 태영그룹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사주 관련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이번 증인 출석은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다. 여당은 자사주 취득 후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며, 야당 또한 처분의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라는 방향에는 공감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사주를 더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롯데의 입장이 정책 방향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롯데지주의 자사주 비중은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에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2017년 지주사 전환 당시 여러 계열사 지분이 롯데지주 자기주식으로 편입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배당정책의 유연성 확보, 그룹 내 유동성 관리, 지배력 유지 등 복합적인 이유로 보유 규모가 고착화됐다.
회사는 경영 안정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저PBR 구조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한다. 실제로 롯데지주의 PBR은 약 0.35배 수준으로, 자본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롯데는 지난 6월 자사주 524만5000주(약 5%)를 계열사 롯데물산에 1450억원에 매각하며 보유율을 32.5%에서 27.5%로 낮췄다. 회사 측은 "시장 충격을 완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자사주가 여전히 전체 지분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자사주 취득 즉시 또는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하도록 설계돼 있어, 기존 보유분에 대한 소급 적용 여부가 향후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사주 활용 대안으로 거론되는 교환사채(EB) 발행은 현실적으로 제약이 크다. EB는 자사주를 담보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최근에는 '소각 회피용 편법'으로 비판받고 있다. KCC는 지난 9월 자사주 9.9%를 활용한 EB 발행 계획을 공시했다가 주가 급락과 주주 반발로 철회했다. 태광산업도 자사주를 기초로 한 EB 발행을 추진했으나 2대주주의 가처분 신청과 사외이사 반대에 막혀 중단됐다. 시장의 시선이 냉정해지면서 EB는 대기업에게 오히려 부담스러운 카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지주가 국감장에서 제시할 해법은 사실상 세 가지다. 우선 자사주 소각 계획을 공개하는 방안이다.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재무여력 약화와 지배력 저하가 불가피하다.
부분 매각과 일부 소각을 병행하는 절충안도 거론된다. 완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절반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명확한 입장 없이 시간을 벌어 규제 흐름을 관망하는 전략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정치권의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그룹 계열사가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는 방식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지난 6월 롯데물산에 자사주를 매각한 것과 같이 다른 계열사를 활용해 자사주 보유 비중을 줄이는 것이 EB 발행 등 다른 방안보다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국감에서 롯데지주가 롯데물산에 자사주를 처분한 것을 두고 "계열사 간 순환 보유를 통한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여, 이 방법 또한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사주를 시장 환원 대신 지배력 유지에 활용해왔다"라며 "소각 유예기간을 최소화하고,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쓰는 행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롯데의 선택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유사한 처지의 대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SK㈜는 자사주 비중이 24.8%, 태영그룹·두산·HDC·LS·하림·HD현대 등 주요 지주사들도 15~20% 수준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신영증권(53.1%), 부국증권(42.7%)이 대표적인 고비중 보유 기업이다. 이들 모두 롯데의 행보에 따라 자사주 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이 소급적용을 강행할 경우, 이들 역시 대규모 소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자사주 소각이 기업 재무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회계상 자본총계에는 변동이 없지만, 자사주를 재매각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재무 운용의 유연성은 줄어든다. 또한 소각으로 전체 발행주식수가 감소하면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사라져 최대주주의 지분율은 오히려 높아지지만,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장치로 활용해온 기업이라면 실질적 지배력은 약화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감에서 롯데가 자사주 처리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면 다른 대기업들도 순차적으로 입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자사주 보유·소각 관행 전반을 제도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감 출석 앞둔 고정욱 사장…자사주 처리 방향 답해야
EB 발행 제약·계열사 활용 비판…소각 외 방안 있을까
자본정책 기준 될 롯데의 대응…정치권·재계 모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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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정책 기준 될 롯데의 대응…정치권·재계 모두 주목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0월 10일 14:0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