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전에 끝내자?…은행권 봐주기ㆍ기업인 증인 철회 속 '맹탕 국감' 예고
입력 25.10.16 07:00
금융권 증인 전무…'봐주기' 논란 속 국감 개시
기업인 줄소환 부담에 증인 철회 잇따라...'검증 밀도 떨어졌다'
APEC 일정 겹치며 "속전속결로 끝내자" 분위기 확산
  • 올해 국정감사가 10월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과 겹치면서, 이례적으로 '맹탕'으로 흐를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행장 등 금융권 핵심 인사들은 증인석에서 사실상 열외됐고, 기업인들은 대거 소환됐다가 '발목잡기' 논란이 부각되며 증인 철회가 잇따르고 있다. 정책 검증의 밀도가 이전 국감 대비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다.

    15일 국회에 따르면, 올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는 증인과 참고인을 포함해 총 41명이 명단에 올랐다 이 중 금융지주 회장과 행장 등 금융권 최고경영자들은 모두 제외됐다. 이는 최소 행장, 또는 준법감시인 등이 불려왔던 과거의 행보와 대비된다. 물론 종합국감에서 추가로 증인이 의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현 시점에서 금융권 인사가 추가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계산도 읽힌다. 이번 정무위 국감은 이억원 신임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한 뒤 맞는 첫 국감이다. 당국 수장 교체 직후의 '워밍업 국감' 성격을 감안해, 국회가 금융권을 세게 '때리기'보다 당국 쪽에 정책 주도권을 실어주는 그림을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두 수장은 취임 직후 '원 팀(One-Team)'을 강조하며 정책·감독 공조를 강조해왔다.

    특히 이억원 위원장은 취임 직후 조직·인사 쇄신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고,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에도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기류를 피력하기도 했다. 국회가 당국 수장에게 '정책 공간'을 열어주고, APEC 이후 본격 과제를 다루기 위한 숨 고르기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찬진 금감원장 또한 취임 일성으로 금융소비자보호·모험자본 공급 확대·주가조작 무관용 등을 내걸었다. 금감원 내부 재정비와 금융소비자보호총괄본부 격상 후 조직 정비 등 굵직한 이슈를 예고한 상황에서, 이번 국감은 감독 철학과 기조를 점검하는 데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높다.

    은행권 '봐주기' 논란의 이면엔 현실적 이해득실도 있다. 상생금융, 모험자본 공급, 취약차주 지원 등 정부 어젠다 수행 과정에서 은행의 협조가 필수적인 탓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15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에 동원됐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대책에도 은행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어차피 지금 금융지주나 은행을 국감에 소환해봐야, 정책적인 논의보다는 '집사 게이트' 등 소모적인 정쟁으로만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이럴 바엔 APEC 전 금융권에 숨쉴 구멍을 열어주고, 이후 국면에서 그립을 더 세게 쥐겠다는 계산법이 작용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인사들이 대거 국감을 피해간 가운데, 기업인들은 대조적으로 대거 소환됐다. 실제로 현재까지 전 상임위원회에서 증인 명단에 오른 기업인들만 약 190여 명으로 파악된다. 정무위는 종합감사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의장(SK그룹 회장) 등 굵직한 기업인을 채택했다. 

    다만 최근 이러한 '줄소환'이 외려 역풍 조짐을 낳는 분위기다. 대한상의 최태원 의장을 비롯한 총수급 인사 소환에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CEO가 국감에 묶이면 한 달 가까이 조직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 내부에서도 부담감을 느끼는 기류가 감지된다. 행정안전위원회는 최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증인 채택을 철회했고, 이 밖에도 복수의 상임위에서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와 최주선 삼성SDI 대표,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철회됐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기업인 증인 최소화' 기조를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고, 국회 안팎에서는 여당 지도부가 재계 증인 축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이 최태원·정용진 등 중량급 기업인 증인 철회 여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다만 야당에서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 협상 지형은 복잡하다는 평가다.

    결국 올해 국감은 금융권·기업계 모두가 출석을 최소화하면서 맹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연히 여야 질의 초점도 정책 검증보다는 정쟁성 이슈나 자료 제출 공방에 머물 공산이 크다. 국감 본연의 기능이 퇴색한 채, '누가 나오느냐'보다 '누가 안 나오느냐'에 주목도가 더 높은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APEC 우선' 기류가 있다는 분석이다. 2025 APEC 정상 주간은 10월 27~11월 1일 경주에서 열리며, 정상회의는 10월 31일~11월 1일로 확정됐다. 재무장관·중앙은행 부총재 회의(10월 21~22일, 인천) 등 각종 각료·CEO 서밋 일정도 국감 중·말에 촘촘히 박혀 있다. 여야 모두 외교·경제 이벤트 대응에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탓에, "길게 끌지 말고 APEC 전에 끝내자"는 '속전속결' 정서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정치권 안팎에서는 올해 국감의 실질적 쟁점이 APEC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외교 일정과 각종 국제행사가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면서, 의원실과 부처 모두 국감 대비보다 외교 준비에 인력과 시간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감이 끝나기도 전에 경주와 인천 일정 조율에 다들 몰려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APEC을 앞둔 지금, 정치권이 국감보다 '그림 관리'에 더 신경 쓰는 모양새"라며 "다만 지금은 조용해도 그만큼 이후 국면에서 금융권에 대한 정책 압박이 더 강하게 되돌아올 수 있는 점은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