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은행은 지난 8월 시중 통화량(M2)이 4400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15일 밝혔다. 전달 대비 56조원 증가했고, 다섯 달 연속 증가했고, 전달 대비 상승폭도 확대됐으며, 전년대비 증가율은 8%에 달했다.
#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하는 투자자 예탁금도 지난 13일 80조원을 사상 최초로 돌파했다. 이는 코로나 대유행 시절인 2021년 5월 3일의 기존 역대 최대치인 77조9000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 국내 은행의 9월 기준 저원가성 예금 규모는 전년대비 9% 늘며 유의미한 증가세를 보였다. 전체 수신 중 저원가성 예금 비중 역시 전년대비 1.5%포인트 늘어난 39.0%로 확대됐다. 은행의 저원가성 수신 증가는 일반적으로 유동성 증가를 의미한다.
코스피지수는 연초 이후 17일까지 56% 오르며 2000년 이후 연간 상승률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1세기 들어 최대 상승폭이다. 10월 둘째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최근 2주간 0.54%오르며 7년 1개월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국제 금 가격(12월 선물 기준)은 온스당 4380달러를 넘어서며 연초 이후 58% 급등했고, 비트코인 가격 역시 지난 7일 6개월간의 랠리 끝에 사상 최고치인 12만4000달러선을 넘어섰다.
주식은 물론 부동산, 금, 가상화폐까지 거의 대부분의 자산의 가격이 오르며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화폐 가치의 하락을 견디다 못한 투자자들이 자산시장으로 몰려들며 상승 속도는 좀처럼 둔화하지 않고 있다.
자산 가격 급등의 배경으로는 넘치는 유동성이 꼽힌다. '코로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2024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진정되고 오히려 경기 침체 위기가 부각하자,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내리며 완화적 환경을 조성했다.
글로벌 M2 공급량 역시 110조달러(약 15경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M2 공급량은 코로나19 시기 100조달러로 급격히 늘었다가, 2022년 상반기 미국이 긴축에 들어가며 90조달러 초반까지 줄어들었다. 이후 2024년 긴축 사이클이 종료되며 다시 늘어나기 시작, 올해 들어서는 거의 매달 사상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유동성 증가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금이었다. 화폐가치 하락 우려, 관세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및 지정학적 긴장 우려가 겹쳐지며 금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2026년 12월 금값 전망을 온스당 4300달러에서 49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산업재이자 금 대체상품 성격을 띄는 은값 역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전략 담당은 "금 가격은 지금 인플레보다 국제 질서 변화에 민감해졌으며, 내년에는 연준 정책을 둘러싼 독립성 문제(인플레이션)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며 "내년 금 가격 온스당 5000달러 전망이 허황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일반적으로 증시와 금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금이 그간 '안전자산' 역할을 해온 까닭이다. 다만 이번 국면에선 금과 증시가 함께 오르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라는 말 외에는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평가다.
국내에선 여기에 더해 반도체 업황 턴어라운드에 따른 대형 IT주 랠리와,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가 더해져 시세가 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
관심은 유동성이 초래한 '에브리씽 랠리'가 현 정부 최대 현안인 '부동산 가격'에 미칠 영향으로 모여진다. 정부는 최근 서울 전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며 집 값 상승세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일정 가격 이상 주택에 대한 대출 금액 제한, 1주택자 전세자금 대출 총부채상환비율(DSR) 편입 등 '금융 억압'에 가까운 규제책도 함께 내놨다.
문제는 '코스피 5000'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 부동산 가격 상승 억제라는 목표 사이의 간극이라는 지적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미 '코스피가 2000이면 강남 아파트는 20억원, 코스피가 5000이면 강남 아파트는 50억원'이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증시와 주택가격의 상관관계는 연구에 따라 일부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강한 양(+)에 가깝다. '서울지역 아파트가격과 주식시장 및 주요 경제지표와의 상관관계'(최정일ㆍ이옥동, 2014) 연구에서는 코스피와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관계수가 0.8566으로 '매우 높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유동성 폭증의 시대에 증시는 부양하면서 부동산만 가격을 억누르려다보니 결국 막을 수 있는 건 '거래량'밖에 없었던 것 같다"며 "정책 의도대로 거래는 크게 줄어들겠지만, 서울 대단지 신축 아파트는 '사치재' 영역에 진입했기 때문에 규제를 뚫고 거래되는 물건의 가격 상승세는 꺾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유동성은 넘치는데, 금융 규제만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시장의 관측은 회의적이다.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면 결국 세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데, 이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 10ㆍ15 부동산 대책과 관련, 정부는 공시지가 인상을 통한 보유세 부담 확대 역시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공시지가 조정을 통한 보유세 부담 상향은 결국 은퇴자, 장기 거주 중산층 등 현금 흐름이 취약한 계층을 거주지에서 내쫓는 양극화 현상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며 "조금만 기다리면 양질의 주택이 대규모로 공급될 거라는 믿음을 주지 않는다면 시장의 매수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확대 국면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15일 양적긴축(QT)을 조기에 종료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중국 역시 위안화 절하 압력이 진정되며 지급준비율 인하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 확대 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 가능하다.
다만 한국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정우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15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싸이클은 끝났으며, 앞으로 동결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동산 규제가 강화됐지만 효과적인 주택 공급 정책은 부재한데, 이런 구조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핵심 이유였다. 주택 시장 과열 및 지속적 원화 약세 등 금융안정 위험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의 매파적 기조가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복잡한 시그널 속 화폐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교적 선명하므로, 개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현금을 유동성에 민감한 투자자산에 많이 노출시키는 게 대안일 수 있다"며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은 막힌만큼, 당분간은 IT 대형주를 중심으로한 증시와 가상자산 시장이 활황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Invest Column
시중 통화량, 투자자 예탁금 사상 최대...자산 가격 급등
'원래는 상극'인 金과 증시 동시 랠리...'화폐 가치 하락' 신호
거래 틀어막은 부동산 대책...가격 잡을지는 여전히 회의적
해외 유동성 증가는 지속될 듯...국내는 부동산 가격이 변수
시중 통화량, 투자자 예탁금 사상 최대...자산 가격 급등
'원래는 상극'인 金과 증시 동시 랠리...'화폐 가치 하락' 신호
거래 틀어막은 부동산 대책...가격 잡을지는 여전히 회의적
해외 유동성 증가는 지속될 듯...국내는 부동산 가격이 변수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0월 17일 16:1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