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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투자시장의 '슈퍼스타'는 금이었고, '슈퍼빌런'도 금이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
연초 이후 지난 10월22일까지, 국제 금값(선물 기준)은 65.7% 오르며 글로벌 자산군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9월에만 9차례에 걸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금은 10월 들어서도 3주간 13% 더 오르며 투자자들을 열광시켰고, 그리고 그 뒤 일주일간 11% 폭락하며 '상투잡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금값 상승세가 이제 끝났나? 아니면 더 오를 수 있나?' 드라마틱한 가격 변화를 지켜본 투자자들의 다음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최근 돈의 흐름은 재상승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세계 최대 금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골드트러스트(GLD)의 금 보유량은 10월 20일 1058.66톤에서 27일 1038.92톤까지 줄었다가, 30일 1040.35톤으로 반등했다. ACE KRX금현물, TIGER KRX금현물 등 국내 금 ETF엔 최근 한 주간 1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몰렸다.
금값이 10%가량 조정을 받은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언급된다.
먼저 관세 부과 이후 다소 경쟁적으로 치닫던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을 계기로 화해 무드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금값 하락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그간 중국은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외환보유고 내 미국 국채 보유 비중을 낮추고 대신 금을 매입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공급 측면에서의 우려도 있었다. 중국 간쑤성 지질당국은 지난 16일 40톤 규모 대형 금광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2024년 11월 발견된 중국 후난성의 300톤 규모 초대형 금광 발견 사실이 함께 재조명되기도 했다. 1980년부터 2000년 사이 금값 급등과 기술 발전의 영향으로 금 채굴량이 5배 이상 늘어나며 금값이 장기 우하향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런 공급발 금값 하락 쇼크가 올 수 있다는 논리가 제기된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보면 금값 하락을 촉발했던 이 같은 요인들은 일정부분 정리가 된 상황이다.
30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일부 성과를 냈지만, 전반적으로는 '노 딜'(No deal)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나왔다. 안보 이슈의 핵심인 대만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관세 역시 중국에 대한 평균 관세율이 57%에서 47%로 축소되는 데 그쳤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역시 '철폐'가 아닌 '유예'이며, 1년마다 재협상을 해야 한다. 양국 정상의 회담 시간은 100분에 그쳤으며 공동기자회견이나 합의문 발표도 없었다.
중국의 금광 발견 역시 상업화까지는 5~10년이 소모되며, 최근 글로벌 금 채굴량이 줄어들고 있어 유의미한 공급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울 거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후난성 금광 발견 발표 직후 온스당 2770달러였던 국제 금값은 2주간 7%가량 조정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상승을 시작해 최근까지 최고 70%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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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측면에서 보면 금의 공급은 거의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가 짙다.
현재 인류가 채굴한 금의 총량은 23만8000톤이며 연간 신규 채굴량은 3000톤 안팎이다. 중국을 비롯해 호주, 남아공,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2020년 이후에도 금 광맥 탐사에 상당한 비용을 들이고 있지만, '경제성 있는' 금광 발견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현재 경제적으로 채굴 가능한 금광의 잔여량은 7만톤 안팎으로, 향후 20년 뒤엔 고갈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는 여전히 적지 않다.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속도는 여전히 빨라지고 있다.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중앙은행 및 기타기관 금 수요는 220톤으로 전 분기 대비 28%, 전년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영국의 귀금속 투자업체 불리언볼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제 금 시장에서 가장 많은 금을 매입한 곳은 폴란드 중앙은행(67.2톤)이었다.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중앙은행도 각각 34.5톤, 22.1톤을 매입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19톤을 매입했다.
이들 중앙은행이 금을 매입하는 이유는 대부분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라는 평가다. 러시아와 유럽연합, 그리고 미국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분쟁 주변국들이 탈(脫) 달러ㆍ탈(脫) 유로 의존 차원에서 금 매입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의 경우 국가 신인도를 위해 금을 매입하고 있다는 점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 등 원자재 수출국 역시 수출대금 변동에 대응해 금 자산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메리츠증권은 중앙은행 및 기관들의 금 수요에 대해 '주요국의 급증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에 대한 신뢰성이 낮아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안전자산으로 금이 채권을 대용(proxy;프록시) 했다는 것이다. 미국 국채 30년물과 10년물의 격차를 뜻하는 30년 스프레드(spread)가 현재 60bp(0.6%포인트) 가까이 벌어져 있는데, 이는 향후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것으로 금 선호 요인이라고 봤다.
결국 금 가격 상승의 근간에는 글로벌 통화량 증가가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에 따르면 10월28일 현재 미국 시중 통화량(M2)는 약 22.2조달러(3경1600조원)로, 2022년 4월의 기존 최고치 22조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M2 역시 현재 114조달러(16경2600조원)으로 연초 이후에만 8.5% 늘어나며 역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971년 금태환제 폐지 이후 글로벌 금값은 미국 M2와 밀접한 관련성을 띄어왔다. 달러의 대체상품이자 채굴을 통해 공급량이 달라지는 원자재로써 단기적으로는 큰 변동성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 크게는 M2가 증가한 수준만큼 금값이 오르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통화량 증가에 따른 금값 상승은 가치저장수단으로서 비트코인과도 일부 공유하는 특징"이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0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인하했고 12월에도 추가 인하할 가능성이 아직 높은데다, 12월엔 양적긴축(QT)도 종료하기 때문에 유동성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LS증권은 "트럼프 정부 출범 당시부터 미국이 준비자산에서 금을 팔고 비트코인을 살 거란 음모론이 제기돼왔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금 가격 하락은 중장기적인 변화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기 때문에 금의 상승 요인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금값의 급락에도 '일시적 가격 조정은 금 시장에 건강한 것'이라며 내년 1분기 온스당 4440달러, 4분기 5055달러의 기존 전망치를 유지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HSBC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올해 연말까지의 금값 전망치는 3800~4000달러 내외로 차이가 있지만, 내년 말 50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데엔 동의하고 있다.
Invest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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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0월 31일 14:3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