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 튼 '꼼수' 신종자본증권, 자본시장 잠재위험 키운다
입력 25.11.05 07:00
취재노트
여러 발행 시도 끝 선례 만들어져
영구채 발행에 모회사 보증하더라도
정작 모회사는 자금보충 강제성 없어
영구채 특성 파고든 꼼수 계약 평가
발행 늘어날수록 시장 잠재 위험 증가
PRS 부채 인식 시 대안 될 가능성도
  • 이자를 못 내거나 만기에 상환하지 못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이 물꼬를 텄다. 선례가 생긴 이상 '꼼수' 영구채 발행 시도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부 계약 내용을 알기 어려운 개미 투자자에게까지 위험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컬처웍스가 지난 9월 24일 발행한 1500억원 규모의 사모 영구채를 '꼼수' 영구채 발행의 첫 사례로 꼽는다. 이전과 달리 새로운 금융 구조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이 영구채 구조를 도식화하면 롯데컬처웍스가 영구채를 발행하고, 엘씨메모리제일차(SPC)가 기관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집해 이를 인수하는 구조다. 표면금리는 연 5.5%다. 스텝업 개시일은 발행 후 3년부터 적용되며 ▲3년 후 250bp(1bp=0.01%p) ▲4년 후 300bp ▲5년 후 350bp 순으로 이자가 추가된다.

    모회사 롯데쇼핑은 SPC와 자금보충 약정을 맺어 롯데컬처웍스 영구채 발행을 지원했다. 롯데쇼핑은 롯데컬처웍스가 이자를 내지 못하거나 원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SPC에 자금을 보충하기로 했다. 롯데쇼핑은 롯데컬처웍스 지분 86.37%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컬처웍스가 영구채를 3년만에 조기상환할 경우 SPC는 롯데컬처웍스에서 받은 자금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며 계약은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롯데쇼핑의 자금보충은 필요하지 않다.

    문제는 자금보충이 필요한 상황에서 롯데쇼핑의 자금보충 약정에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계약에 따르면 자금보충의 의무가 발생하는 경우는 롯데컬처웍스에 청산절차 개시 명령이 내려진 경우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회생, 도산 등 청산 이외의 상황에서는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회사가 자발적으로 청산하지 않는 이상 법원이 청산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 과정 또한 지난할 거란 설명이다.

    여타 비금융 기업들이 발행했던 영구채와 이 지점에서 구조가 차이 난다. 기존 사례에서는 계열사가 모회사의 신용등급을 활용해 낮은 이자로 영구채를 발행할 때 모회사는 만기 상환, 이자 납입 등 '별도'로 만든 의무에 보증을 씌웠다.

    모회사가 사실상 계열사의 영구채 '자체'에 보증을 씌우면 결국 모회사가 어떠한 보증 채무도 지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영구채의 특성 때문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영구채는 발행자가 원금이나 이자에 대해 현금 등 금융자산으로 상환할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즉, 의무가 없는 계약에 보증을 씌운 셈이다.

    꼼수 영구채 발행은 이제 갓 물꼬를 텄다. 최근에도 다수 기업에서 이같은 발행을 시도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자본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발행 시도를 저지하고 있다. 다만 선례가 생긴 이상 '무책임' 구조의 영구채 발행을 100% 막기 힘들어 보인다.

    발행 사례가 많아질수록 미상환 우려가 커진다. 보통 영구채를 발행하는 기업들은 재무구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신용등급 A급 기업의 발행 비중이 늘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592.6%다. 영구채를 발행하지 않은 A급 기업의 평균 부채비율 120.1%와 비교하면 약 5배 차이난다.

    특히 사모 방식의 영구채의 시도에서 이러한 시도가 늘어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모 영구채는 공모 영구채와 달리 신용평가사 한 곳에서만 등급을 받아도 발행할 수 있다. 발행 기업은 투심을 생각하면 두 곳에서 등급을 받는 게 안정적이다. 그러나 신용평가사 두 곳에서 등급을 받지 못해 공모로 발행하지 못하는 등의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한 곳이라도 설득해 사모로 발행하는 편이 낫다.

    추후 주가수익스와프(PRS)가 회계상 부채로 인식될 경우 꼼수 영구채가 대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PRS와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재무여력이 떨어진 기업일수록 부채비율을 방어할 요인이 더 크다.

    또 다른 문제는 꼼수 영구채가 특정금전신탁, 종합금융계좌 등을 통해 일반투자자에게 판매되는 경우다. 전문투자자인 기관투자자는 영구채 발행 과정에서 위험성을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투자자는 영구채의 복잡한 구조를 감안하면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모회사의 '뒷배'가 있다니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번 롯데컬처웍스 영구채도 유동화를 거쳐 일반투자자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이 발견됐다.

    이번 롯데컬처웍스의 발행 사례 하나로 부작용을 예단하기에 시기상조일 수 있다. 재계 순위 5대 그룹의 계열사가 1500억원 때문에 투자자와 문제가 생길 거라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꼼수 영구채가 시장에 만연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영구채는 어려운 기업에 있어 사실상 마지막 조달 수단인데, 꼼수가 퍼질 경우 잠재 위험성이 커진다. 혹여나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투자자의 손실은 물론 지난 2022년 '흥국생명 영구채 조기상환(콜옵션) 거부 사태'처럼 경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선례가 생긴 이상 기업 입장에서 모회사는 부담 없이 계열사를 지원할 수 있고, 계열사는 좋은 조건으로 조달할 방법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며 "꼼수 영구채 발행이 증가하고 시장에 유통될수록 위험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