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운 13%·올리브영 23%’…자사주 풀어야 할 CJ, 결국 초점은 승계로
입력 25.11.11 07:00
정부 ‘자사주 소각' 기조…CJ도 처리 방안 고민 불가피
'현금 쌓인' 올리브영 활용에 자사주 활용도 가능하지만
확실한 정부 기조 장벽 …승계 남아있어 셈법 복잡할 듯
  • 정부 및 여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CJ그룹 역시 자사주 논란을 비켜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승계 과제가 남아 있는 CJ에게 자사주는 단순한 투자 자원이나 주주환원 수단이 아니라, 활용 방안에 따라 향후 지배력 구조와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당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자사주 소각 이슈는 대기업집단 지배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의 긴장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앞서 롯데, SK 등 지주사 자사주 비율이 높은 그룹들을 중심으로 대응 방안이 주목받아왔다.

    현재 CJ그룹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 미래기획실장의 승계 구도다. CJ는 지난달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을 지주사로 이동시키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룹 지주회사인 CJ㈜가 보유한 자사주는 사실상 ‘이선호 지배력 강화 카드’로 여겨져 왔다. 자사주를 활용하면 추가 지분 매입 없이도 지분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현 시점에서 그룹 승계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것은 올리브영이다. 현재 기준으로 이선호 실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가 바로 올리브영인 까닭이다.

    시장에서는 올리브영이 비상장사임에도 현금흐름이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지주사 CJ㈜가 올리브영을 흡수·합병하거나 올리브영이 CJ㈜ 주식을 대량 취득하는 방식으로 구조 개편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CJ㈜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지분을 취득하게 되면 실질적 중간지주 형태가 가능하다는 해석도 있다.

    일각에서는 올리브영이 CJ대한통운 등 계열사의 자사주를 매입해 그룹 내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사주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지배구조를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 전략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다만 최근 정부가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 대상”이라는 입장을 강화하면서 이러한 활용 시나리오는 현실화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오너가의 지배력 강화도 없지 않다.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자사주 소각 의무 대상을 상장사뿐 아니라 비상장사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자사주 22.6%를 보유한 올리브영이 이를 전량 소각하면, 이선호 실장 지분율은 소폭 올라가게 된다. 다만 결국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려면 지주사 CJ 지분 확보가 핵심이기 때문에, 올리브영 지분율이 소폭 올라가는 것만으로는 승계의 ‘결정적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CJ 입장에서는 올리브영에 현금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계열사 자사주를 매입해 자연스럽게 그룹 내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재 여당의 ‘자사주 소각’ 기조가 강경해 실제 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는 기업이 자사주를 사실상 ‘승계·지배력 유지용 우회 지분’으로 활용하는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의무화하고, 기존 보유분도 처분·활용 시 엄격한 절차를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은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나 승계 수단이 아닌 주주환원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상법 개정 움직임을 전후로 기업들은 자사주 처분에 속도를 내왔다. 지난 7월 국회 통과 직전 자사주를 우호 주주에게 넘긴 사례로는 호반그룹의 적대적 인수 시도에 맞서 자사주 동맹을 맺은 LS·한진그룹이 마지막이었다. 

    7월 직전인 6월 롯데지주는 자사주 524만 5,461주(지분 약 5%)를 계열사 롯데물산에 처분해 1,477억 원을 확보했다. 롯데지주는 올해 초 15% 내외 자사주를 지배주주·특수관계인에게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교환사채(EB) 형태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태광산업의 EB 발행 사례에 당국이 제동을 걸면서, 자사주를 최대주주·특수관계인 또는 계열사에 넘기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일반적이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발표도 흔하다. 자사주 처리 역시 유연해 매입 후 보유하거나 소각하는 방식 모두 가능하며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는다.

    다만 국내와 미국의 기업 환경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미국 대형 상장사의 주요 주주는 대부분 기관투자자이며, 한국처럼 오너 승계 사례가 드물다. 이에 따라 오너가 자사주를 승계나 지배력 유지 목적으로 활용할 여지는 상대적으로 적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회사 자산’인 자사주가 일부 오너의 필요에 맞게 활용돼 온 것이 사실이고,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라 주주환원에 쓰여야 한다는 정책 기조에는 시장도 공감하고 있다”며 “미국은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지만, 대형 상장사의 지배구조가 국내처럼 오너 중심이 아니라서 승계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적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