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證, 롯데케미칼 PRS 6600억 단독 리파이낸싱...석화 업황 리스크는 변수
입력 25.11.12 07:00
다른 증권사들 롯데 익스포저 한도·투심 부담에 난색
한국證, 내년 IMA 인가·발행어음 운용 염두에 단독 인수
석화 업황 침체 속 리스크 감수…‘공격적 영업’ 행보 지속
  • 롯데케미칼이 6600억원 규모의 주가수익스와프(PRS) 리파이낸싱(차환)을 단행하며 거래 증권사를 교체했다. 기존 파트너였던 메리츠증권 대신 한국투자증권을 낙점한 것이다. 

    지난해 '변종 구조' 논란에 휩싸였던 메리츠증권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불리한 조항을 개선한 안정적 구조로 재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석유화학 업황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리스크를 인수한 한국투자증권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최근 만기가 도래한 6600억원 규모 PRS 계약을 한국투자증권과 새로 체결했다. 리파이낸싱 목적이다. 메리츠증권은 재계약 협상에 나섰으나 조건 조율에 난항을 겪으며 결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기존 계약의 불리한 조항 삭제를 요구했고, 메리츠증권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여러 신용보강 방안을 제시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계약의 만기는 5년이었지만, 1년 후 재협상 조건이 포함돼 있어 최근까지 협상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조율에 실패하면서 지난 7일 만기 도래와 함께 계약이 종료됐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메리츠증권과의 계약을 종결하고 한국투자증권과 새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메리츠증권과의 기존 계약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던 조항을 개선했다. 당초 계약은 외형상 미국 자회사 지분(루이지애나(LCLA) 지분 40%)을 매각하는 형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롯데케미칼이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라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메리츠증권이 롯데케미칼 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단기채권(ABCP 등)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을 경우, 롯데케미칼이 해당 물량을 직접 매입하기로 한 약정 때문이다.

    이번 한국투자증권과의 재계약에서는 이 같은 조항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 만기가 1년이었던 기존 계약과 달리 이번 계약은 4년 이상으로 설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케미칼이 이번 계약에서 금리 수준보다 계약 구조 개선에 방점을 뒀다는 점에서 금리는 다소 상승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 금리는 5%대 초반이다. 업계에서는 롯데지주의 입장도 일정 부분 반영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복수 증권사와 공동 리파이낸싱을 추진할 가능성도 거론됐으나, 결국 한국투자증권이 단독으로 참여했다. 은행 지주 계열 증권사들의 경우 금융그룹 차원에서 롯데그룹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가 이미 한도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금융지주 증권사들 역시 롯데그룹 계열사 및 롯데케미칼에 대한 기존 대출 규모가 상당해 추가 참여 시 내부 투자심의위원회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국투자증권만이 물량 인수에 나섰다. 내년 종합투자계좌(IMA) 인가를 앞두고 발행어음 확대를 염두에 둔 공격적 영업으로 해석된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계약을 총액 인수한 뒤 셀다운(재판매) 없이 발행어음 북(book)에 직접 편입할 것이란 전언이다. 자기자본 운용을 통한 수익 극대화 전략을 이어가는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관련업계에서는 석유화학 업황의 장기 침체와 이에 따른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 신용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를 한국투자증권이 떠안게 된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롯데케미칼의 향후 행보가 불투명한 만큼 PRS 상환 불확실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3년 이상 지속된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2조원을 훌쩍 넘는 누적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단기 개선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로서는 나프타분해시설(NCC)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며, 신용등급도 지난 6월 강등됐다. 신용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회사채 시장 진입이 어려워 기업어음(CP) 시장에 머무는 양상도 포착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기업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PRS 계약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업황 회복 시점이 불투명한 데다 실적 부진이 지속되는 점을 감안하면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롯데케미칼이 여전히 신용도가 양호한 기업이긴 하지만, 투자심리가 위축된 데다 만에 하나 상환받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