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중소·중견 QIB 활성화 원하지만…높은 신평사의 문턱
입력 25.11.14 07:00
취재노트
BBB-급 이상 등급 요건 충족 못하는 경우 잦아
별도 평가모델 도입?…"현실적 대안 마련 필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제시후 기업 선별 지원"
  • QIB(적격기관투자자·Qualified Institutional Buyers) 방식 회사채 프로그램이 본래 취지와 달리 중소·중견기업에는 여전히 '높은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보증을 통한 발행이 이뤄지려면 신용평가사로부터 최소 BBB-등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등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발행이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산업은행이 중소·중견기업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신용평가모델이 필요하다고 신평사에게 개선을 요청하고 있으나,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평가모델 개편보다는 현실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신평사들은 기업의 절대적인 규모와 피어그룹(유사기업) 내 상대적 위치 등을 고려해 신용등급을 매긴다. 이 과정에서 중소·중견기업이 등급 책정에서 보다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QIB 회사채 발행을 추진 중이던 한 식품기업은 안정적 실적에도 불구하고 피어그룹이 오뚜기라서 낮은 등급을 받았다. 나이키·언더아머·아디다스 등 우량 거래처를 보유한 의류 OEM(주문자 상표 생산) 기업의 경우 피어그룹이 한세실업으로 묶였으며, BB급 수준으로 평가받아 결국 QIB 회사채 발행 계획을 철회했다.

    업계 관계자는 "BBB-등급 이상이면 신보 보증을 통해 AAA급으로 QIB 발행이 가능하지만, 그 등급을 받는 게 쉽지 않다"며 "은행 내부평가로는 AA급이지만 신평사 등급은 BBB-등급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실제로 신평사들과 만나 중소·중견기업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신용평가모델 도입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평사들은 별도 평가모델 도입에는 부정적인 견해을 드러냈다. '직접금융 사다리'라는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업의 신용등급은 결국 채권의 원리금 회수 가능성을 의미한다. 기업의 규모와는 별개로 채권자 입장에서는 만기 때 원리금 상환이 가능한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해 신용등급의 잣대를 달리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이미 업종별로 평가방법론이 세분화돼 있으며, 중소·중견기업 전용 모델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중견기업은 공개 자료가 부족하고 검증 가능한 지표가 적어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된다"며 "이런 특성을 반영하면 (별도 모델 도입시) 어드밴티지보다 페널티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책금융기관과 협력해 BBB-등급 이상의 적정 기업 발굴을 위한 협력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앞의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 입장에선 답답할 수 있지만, 신평사가 이를 직접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며 "대신 매출, 영업이익률, 차입금 등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후 정책금융기관이 기업을 보다 잘 선별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의 협력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만일 새로운 신용평가모델을 도입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다. 기업별로 등급 기준 일관되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의 시장 참여 유인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BBB급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정책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보였다. QIB 회사채 발행을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회사채 시장과 접점을 넓히고, 직접금융 조달 이력을 축적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NICE(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BBB등급 회사채 발행 비중은 2005~2006년 전체 회사채 발행액의 30%를 넘었지만, 최근에는 3~6% 수준에 그치는 수준이다. NICE신평은 BBB급 채권시장에 대해 수요가 없어서 투자하기 좋은 BBB급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다시 투자하기 좋은 BBB 등급 기업이 없어서 수요가 없어지는 전형적인 레몬마켓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 신평사 임원은 "신평사들도 QIB 회사채 시장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적극적으로 협조하자는 분위기"라며 "다만 지금은 투자자 신뢰가 먼저다. 등급 평가 기준을 낮추기보다 BBB급, 하이일드 시장이 점차 자리 잡도록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