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하반기 정기평정을 앞두고 석유화학 업종에 대한 경고등을 켜고 있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구조조정 속도도 붙지 않으면서, 주요 기업 상당수가 등급 하향 트리거를 충족한 상태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현재 3개 신평사 중 최소 1곳 이상에서 '부정적' 전망이 달린 석유화학 기업은 총 8곳이다. ▲LG화학(AA+) ▲SK지오센트릭(AA-) ▲한화토탈에너지스(AA-) ▲HD현대케미칼(A) ▲여천NCC(A-) ▲SK피아이씨글로벌(A-) ▲SK어드밴스드(BBB+) ▲효성화학(BBB) 등이 대상이다.
구체적으로 HD현대케미칼이 신평사 3곳으로부터 모두 '부정적' 등급전망을 부여받았다. 신평사가 제시한 매출액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지표, 순차입금의존도 등 모든 신용등급 하향 트리거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한화토탈에너지스와 여천NCC는 신평사 2곳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특히 여천NCC는 지난 8월 부도 위기까지 대두된 만큼 신용등급 추가 강등된다면 BBB급으로 밀려나게 된다. 여천NCC가 발행한 일부 채권의 경우 장단기 신용등급이 BBB+, A3 이하로 떨어질 경우 강제로 조기 상환하도록 약정이 걸려 있어 등급 하락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하게 된다.
신평사들은 통상 전년도 실적을 토대로 매년 6월 상반기 정기평정을 진행하고, 11월에는 상반기 혹은 3분기 누적 실적을 반영해 하반기 정기평정을 실시한다. 올해에는 다수의 석유화학 기업이 이미 '부정적' 전망을 달고 있는 데다 업황 회복도 지연되면서, 하반기에는 실제 등급 하향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평사 관계자는 "올해 연말 석유화학 기업들의 등급을 두고 내부에서 고민이 많다"며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은행 만기만 연장해 주는 등 지지부진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등급이 낮은 기업들 위주로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더 세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가 겹친 가운데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이 트리거 기준을 밑돌면서다.
신평사들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회복 속도의 지연'이다. 일부 기업은 상반기 실적을 통해 적자 폭이 다소 줄거나 현금흐름이 개선된 사례도 있지만, 신평사 기준에서 요구하는 수준에는 여전히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기업들의 차입금 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EBITDA 마진은 팬데믹 이전 대비 절반 이하로 낮아진 상태다.
또 다른 신평사 연구원은 "수요 회복 없이 구조조정도 지연되고 있어 기업별로 차별화된 실적·재무개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등급 조정은 피하기 어려울 것"며 "특히 A급 이하 기업들은 이미 등급 하향 트리거 요건을 대부분 충족한 상태"라고 답했다.
중국 중심의 대규모 증설 사이클이 이어지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는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범용 제품군에서는 중국 기업들과의 원가 경쟁에서 밀리고,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군에서는 일본 기업 대비 기술·품질 우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업황 회복이 오더라도 가격·원가·수요 어느 지표에서도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부 차원에서 석유화학 업체 간 자율 구조조정을 내세웠으나, 아직까지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다. 신평사 역시 산업 구조 재편 이후 개별 기업의 역량에 따라 신용도를 결정할 예정이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HD현대케미칼이 이번 석유화학 구조 개편 작업의 1호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기업들 간 이해관계 상충, 각 회사별 지원 여력 등에 따라 합의 도출까지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대부분의 기업이 설비 효율화 수준의 미세 조정만 해왔고 본질적인 구조 개편은 없었다. 그 결과가 재무지표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라며 "어떻게든 감축을 해야 하는 상황이며, (석유화학 기업들의) 적자가 줄긴 줄었는데 그게 신용등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고 짚었다.
HD현대케미칼, 신평사 3곳 모두 '부정적'
여천NCC, 등급 하향시 사채 조기상환 약정
정부發 구조조정 지연으로 신용도 불확실
여천NCC, 등급 하향시 사채 조기상환 약정
정부發 구조조정 지연으로 신용도 불확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1월 1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