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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근접하면서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위험 회피)'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정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제도적으로 열어둔 환헤지 옵션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정상 100조원이 넘는 달러 매도 여력이 있음에도 실무상에서 사실상 포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국민연금은 2018년 이후 해외투자 자산에 대해 100% 환오픈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는 해외주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환오픈이 수익률 변동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다만 기획재정부의 요청에 따라 전략적 환헤지 10%, 전술적 환헤지 5% 등 해외자산을 최대 15% 범위 내에서 헤지할 수 있도록 규정해 뒀다. 올해 8월 기준 해외투자 자산 규모(771조원)를 감안했을 때 환헤지에 동원 가능한 물량은 약 115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기금운용본부 내에서는 "환헤지 전략의 실효성이 이제 크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환변동을 통한 손실 방어가 주요 과제였지만, 최근에는 헤지 비용을 지급하면서까지 환율 리스크를 줄일 유인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고비용 헤지를 통해 방어할 수 있는 폭보다 해외 주식 수익률이 가져다 주는 성과가 훨씬 크다는 논리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주식 성과가 헤지 비용을 압도해 헤지 자체가 기회비용이 되는 구조"라며 "환차손 방어를 뛰어넘는 주식 투자 수익률을 가져오겠다는 기조다"라고 말했다.
또 수탁은행들의 캐파를 고려했을 때 환헤지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탁은행이 감당할 수 있는 캐파가 제한된 상황에서 대규모 선물·옵션 거래를 통한 안정적 헤지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이 수십조원 단위로 헤지 물량을 쏟아낼 경우 외환시장에서 이를 그대로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쏠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가 장기적으로 최대 3500조원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정책이 원·달러 환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 국민연금 입장에선 부담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헤지를 시작하면 시장이 이를 방향성 베팅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며 "오히려 변동성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국민연금이 환헤지에 나서더라도 환율 안정 효과는 미지수라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원화 약세는 단기적 요인보다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엔데믹 이후 엔화 동조화 현상이 심화한 데다, 국내 기관·개인의 해외투자 수요 증가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꼽힌다. 또 수출 기업들은 단기 환율 고점에서 달러를 매도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달러를 보유하려는 유인이 커진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환율을 투자 전략 중 하나로 보고 있어 구체적인 헤지 여부와 타이밍을 외부에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칫 특정 시점의 헤지 결정이 정책 신호나 시장 개입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를 목적으로 환헤지에 나서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환 역시 전체 투자 전략의 하나로서 판단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투자 방향이나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외투자 자산 15% 범위 내에서 환헤지 가능
"고비용 헤지보다 해외 주식 수익률이 더 높아"
원화 약세 '구조적' 요인 커…헤지 효과 미지수
"고비용 헤지보다 해외 주식 수익률이 더 높아"
원화 약세 '구조적' 요인 커…헤지 효과 미지수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1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