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라는 정체성에 발목잡힌 쿠팡…'공공의적' 프레임은 자업자득
입력 25.12.03 07:00
Invest Column
기술의 근본인 데이터 관리 실패 드러나
사태 심각한데 창업자는 모습 드러내지 않아
정치권·대중의 질타 받아들여야
  • 쿠팡 사태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기업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투자자, 시장, 대중의 기대치까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말그대로 '씹어먹은' 쿠팡은 스스로를 유통 기업보다는 기술기업임을 줄곧 강조해왔다. 물류센터에 숨겨진 알고리즘, 로켓배송을 가능케 한 인공지능(AI) 기반의 효율성. 이 모든 것이 한국판 아마존을 강조한 쿠팡이 뉴욕증시 상장 당시 내세웠던 핵심 가치들이었다. 기존 유통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파괴적 혁신자'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이는 국내 전통적인 유통공룡들은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쿠팡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기술 강조의 민낯 그 자체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개인정보 유출이다. '데이터'를 핵심 자산으로 삼고, '기술력'을 성장의 동력으로 내세운 기업이 고객의 가장 민감한 정보 보호에 명확한 허점을 드러냈다는 것은 뼈아픈 역설이다.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플랫폼 기업의 갑질, 새벽배송 문제 등등으로 '공공의 적' 프레임이 씌어진 가운데 벌어진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만큼 일파만파다. 홈플러스 사태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MBK의 후임이 된 것마냥 정치권은 쿠팡에 대해 연일 공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대통령까지 나섰고 영업정지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쿠팡이 끊임없는 외형적 성장, 그를 위한 대관, 또 외부에 비칠 긍정적 이미지에만 집중하면서 정작 기업의 기반을 다지는 내부 시스템의 안정성과 고객 신뢰라는 핵심 가치는 간과했다. 겉으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안으로는 알맹이가 없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기술 기업'의 비전을 제시하며 혁신을 주도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던 리더가 정작 기업의 신뢰가 무너지는 중대한 시점에선 안보인다. 언제나 그랬듯.

    그러면서 김범석 의장의 일련의 행위들만 강조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김 의장이 보유 중이던 클래스B 보통주를 클래스A 보통주 1500만주로 전환해 처분하면서 4846억원을 현금화했다", "5000억원가량을 손에 쥐면서 200만주를 자선기금에 증여하면서도 이를 상당 부분 미국에서 사용해 국내 사회를 외면했다" 등등.

    대기업은 때로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대중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쿠팡에 대한 비판 또는 비난은 그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스스로 '혁신'과 '기술'로 포장했기에 실망감은 더 크고 창업자의 '외면'이 겹치면서 대중의 시선은 급격히 싸늘해졌다.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