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잡음 끊이지 않는 이지스자산운용…왜 시장과 당국에 찍혔을까
입력 25.12.11 15:59
취재노트
싱가폴계 힐하우스 우협 선정 후 오히려 커진 의심
국민연금, 위탁자산 검토 언급하며 절차 문제 제기
흥국생명은 이지스 주주·주관사 대상 고소장 접수
가격 아닌 이지스 향한 신뢰 문제로 딜 분위기 전환
"LP들 이지스 신뢰 무너져…펀딩 문제로 이어질 것"
  •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시장의 의심은 오히려 깊어졌다. 국민연금은 위탁자산 처리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며 강경 기조를 드러냈고, 흥국생명은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가격 경쟁이 아니라 신뢰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1위 부동산 운용사의 매각>이라는 커다란 타이틀에 비해 이 딜(deal)이 흔들리는 요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절차다.

    이젠 '얼마에 팔리는가'보다 '어떻게 팔리려 했는가'가 더 중요한 국면으로 전환됐다. ▲이지스 내외부에서 누적된 긴장감 ▲당국 조사 이후 LP들 사이에 쌓여온 장기적 불신 ▲매각 실무 과정에서의 정보 통제 실패 ▲주관사의 과도한 경쟁 유도 등이 한 점에 모여 폭발했다는 해석이다.

    가격만 놓고 보면 합리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힐하우스는 약 1조1000억원을 써냈다. 거래 지분 약 99%를 기준으로 보면 작년 순익 기준 PER 약 15.5배, 올해 기준으로는 약 16배를 밑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글로벌 피어인 18~19배 대비 크게 비싸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해외 자본 참여가 프리미엄을 일부 끌어올렸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이지스 매각의 프로젝트명이 북유럽 신들의 영역에서 이름을 딴 '아스가르드(Asgardh)'였던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가격을 지탱할 신뢰가 남아 있느냐다. 국민연금이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위탁자산 회수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언급한 것은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회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연금이 "검토"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매각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부턴 가격이 아니라 계약의 정당성과 신뢰의 잔고 문제로 넘어간다.

    국민연금 부동산투자실은 일정 공유 및 정보 제공 방식과 관련해 이지스와 주관사 측에 명확히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우리가 기사를 보고 상황을 알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한 부동산 운용사 임원은 "가격은 논의의 주제가 아니다. LP와의 신뢰가 깨지는 순간 거래는 자동으로 정지된다"며 "이지스는 그 잔고가 이미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년간 이지스를 둘러싼 환경은 거칠었다. 2024년부터 이어진 금감원 수시검사와 감사원 조사는 LP들에게 "회사가 이상 신호를 내고 있다"는 인식을 남겼다. 마곡·센터필드 등 핵심 자산의 공실 우려가 이어지며 성과 신뢰도 흔들렸다.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도 균열이 반복됐다. 지난달 중순 조갑주 전 대표는 인수 직후 구조조정 가능성을 우려해 이지스 계열사 3곳을 제외한 매각 방안을 주관사에 전달했다. 논란이 커지자 즉각 철회했다는 서면을 냈지만 시장에는 찝찝함이 남았다.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왔다.

    우협 발표 전후로 국민연금은 이지스가 매각 스케줄을 공유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으며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때 한화생명, 흥국생명 등 보험사 원매자들이 고려해야 할 킥스(K-ICS) 비율은 당국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라 일정 지연 가능성뿐 아니라 심사 자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LP들 사이에 번졌다. 

    한화생명이 인수 시 조 전 대표의 경업금지 및 초기 구조조정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가정하며 검토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시장에 퍼지는 것만으로도 LP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매도자 측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대목은 주관사 라인의 갑작스러운 변동이었다. 손화자 고문이 초기 자문을 맡긴 곳은 모건스탠리였으나, 딜 진행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김세원 대표 체제로 교체되며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골드만삭스가 전략·톤을 담당하며 사실상 주도권을 확보한 구조가 형성됐다. 골드만이 전면에 나오는 순간 옥션 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흥국생명의 대응 수위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절차적 문제를 검토하는 수준이었던 흥국생명은 이날 실제 고소로 넘어가며 매각 국면 전체의 톤을 바꿔놓았다. 본입찰 가격 전달 과정과 경쟁 구도 설정에 명확한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한 결과다. 

    단순한 이의 제기 수준이 아니라 명백한 분쟁·소송 국면으로의 전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LP 중 한 축이 법적 조치로 들어가는 순간 다른 LP·감독기관·잠재 원매자 모두 절차의 '정합성'을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주주 위임장 유효기간 이슈도 남아 있다. 이지스 측은 "12월까지 유효하다"고 설명하지만 이 날짜가 우협 선정까지의 유효인지, SPA 체결까지 포함하는지, 당국 심사까지 연결되는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LP들 사이에서 반복됐다. 매도자 측은 "인수 의지가 확실하다면 위임 재동의는 어렵지 않다"고 설명해왔지만, 국민연금이 요구하는 것은 형식적 충족이 아니라 절차적 명확성이다.

    내부 긴장도 짙다. 흥국생명의 조 단위 베팅 소식이 알려지자 이지스 내부에서는 "태광그룹이 자사주 활용 문제로 정부에 찍힌 상황인데, 우리도 찍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지연, LP 펀딩 난항을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부동산 운용사처럼 규제 민감도가 높은 업종에서는 원매자 성격 변화만으로도 심사 속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결국 시장에서는 이번 이지스 사태를 신뢰 붕괴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과·지배구조·절차라는 세 축이 매각 국면에서 동시에 흔들렸다는 평가다. 핵심 자산 성과 둔화로 인한 성과 리스크, 당국 조사로 누적된 지배구조 리스크, 일정 공유 실패·LP 커뮤니케이션 부재에서 비롯된 절차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작동했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절차 문제 제기, 흥국생명의 실제 고소, 원매자 변경 가능성 등이 더해지며 딜의 리스크는 일종의 '연쇄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LP가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는 순간 기업가치는 사실상 재산정될 수밖에 없다. 감독기관의 시그널에 민감한 업종 특성까지 고려하면 시장이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다.

    결국 본질은 '신뢰'로 돌아온다. 이번 매각이 어떤 방향으로든 이지스의 기존 위상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는 업계 의견이 크게 갈리지 않는다. 딜의 핵심은 더 이상 얼마에 팔리느냐가 아니다. "이지스의 신뢰 잔고를 어느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느냐"가 됐다. 

    국민연금, 주요 LP들, 원매자, 감독기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정리되지 않는 한 매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