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제' 유력?…일본식·나스닥식 갈림길 선 국내 증시 개편
입력 25.12.12 16:40
코스피·코스닥·코넥스 기능 중복 해소…'승격·강등제' 현실적 대안 부상
일본식 1~3부 리그 모델 검토…상장폐지 충격 완화·질적 관리 강화 목적
코스닥 정체성 훼손 우려도…"코스닥 정체성 유지된다면 개편 자체는 긍정적"
  • 한국거래소가 국내 주식시장 체제 개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장기적으로 국내 시장이 '승격·강등제'를 기반으로 한 단일 시장 체계에 가까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스피·코스닥·코넥스라는 명칭은 유지하되,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원마켓(One Market)을 내부 디비전(Division) 형태로 나눠 운영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도 시장 완전 통합보다는 승강제가 더 현실적인 개편안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코스닥·코넥스 구조 개편 연구용역을 이르면 내년 초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초 코넥스 활성화가 목표였으나, 시장 쏠림과 기능 중복 등 구조적 비효율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더해지며 연구 범위가 크게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결과가 도출되면 금융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개편 논의가 실제 제도 설계 단계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는 모델은 '1~3부 리그' 체계다. 코스피는 실적과 배당이 안정된 대형기업, 코스닥은 기술력 기반의 성장기업, 코넥스는 초기 단계의 신생 기업 중심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프라임·스탠더드·그로스 3부 체제로 시장을 재편한 도쿄증권거래소(TSE)의 사례가 대표적 벤치마크로 거론된다. 일본은 시장 재편 이후 상장 유지 기준을 크게 강화하며 상위 구간을 '선별된 시장'으로 관리해 외국인 자금 유입 기반을 마련했다.

    당국의 문제의식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코스피는 대형주 중심 구조가 고착화됐고, 코스닥은 기술 중심 시장이라는 본래 정체성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코스닥에서 성장한 우량 기업이 코스닥 시장의 밸류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이전상장을 통해 코스피로 이동하고, 코스닥은 개인 비중이 80%에 달하는 '개인 중심 시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관 수급 기반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승강제 도입 논의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상장폐지 제도 개편 이슈도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상장폐지 제도가 적용될 경우 상장 기업의 퇴출로 인한 시장 충격이 상당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반면 승강제가 도입되면 코스피 상장사가 곧바로 비상장으로 전락하지 않고 코스닥으로 강등돼 공시·유통 체계를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일본식 '하위 구간 내 관리' 모델과 유사한 접근이다.

    결국 코스피·코스닥이라는 명칭은 남기더라도, 요건·관리·승격 기준을 하나의 틀로 묶는 ‘라벨만 다른 단일 시장’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벤처캐피탈(VC) 업계 등은 코스닥을 '한국판 나스닥'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의 부진은 기관 수급 부족과 시장 독립성 약화에서 비롯된 문제이며, 승강제가 도입될 경우 코스닥이 코스피의 '하부 리그'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코스피에서 밀려난 기업이 대거 유입되면 시장 질 관리가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처럼 나스닥식 완전 분리를 지지하는 일각에선 '코스피와 코스닥의 기능이 지나치게 겹친 만큼 경쟁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코스닥 개인 비중이 80%에 달하는 구조적 한계를 고려하면, 시장 독립성 강화를 통해 기관 수급 기반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거래소와 당국은 이러한 나스닥식 분리를 실질적 대안으로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국내 기업 생태계와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두 개의 독립 거래소 체제를 만드는 것은 비효율이 크고, 규제 중복과 관리 부담만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식 내부 구조 정합성 강화 모델이 정책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코넥스의 향후 역할도 개편 논의의 핵심 변수다. 민간 장외 플랫폼이 자리 잡을 경우 코넥스의 '초기기업 유통 창구' 기능이 상당 부분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코넥스는 3부 리그로 기능이 재정립되거나, 축소·흡수되는 방식으로 정리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부 코넥스 상장사가 향후 상장적격성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실무진 사이에서 나온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승강제가 도입된다면 코스닥의 기술기업 육성 기능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코스닥이 단순히 '하위 리그'가 아니라 성장 사다리로 자리 잡도록 설계한다면 시장 재편은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