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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초 회사채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예년과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기준금리 동결에 조달금리가 급등하자 회사채 이슈어와 투자자 모두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회사채 시장은 1~2월 이른바 '연초효과'를 누린다. 새 자금이 유입되고 기관들의 투자 여력이 넓어지면서 발행 여건이 1년 중 가장 좋다는 평가가 따른다. 하지만 내년 초 분위기는 전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조달금리가 치솟자 증권가 IB들 사이에서는 "지금 금리 레벨에서는 선뜻 발행을 권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11일 종가 기준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3.366%, 회사채 3년물 AA-등급 금리는 3.604%로 집계됐다. 국고채 금리가 회사채 금리 목전까지 왔다. 은행, 보험사 등 장기 투자 주체들이 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 상대가치를 기준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레벨은 발행사 입장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크레딧업계에선 불과 몇 달 사이에 시장의 기대 자체가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기관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다니다 보면 1~2개월 전만 해도 '국고채 10년물 3% 갈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며 "지금은 3.3%도 이미 넘어섰으며, 시장이 금리 전망을 바꾸는 속도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준금리는 내년 말까지 동결을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연말에는 발행사들이 조달 일정을 철회하기도 했다. SK텔레콤(AAA), KCC글라스(AA-) 등 주요 발행사들은 당초 12월 중 발행을 추진했지만, 채권금리 급등을 고려해 발행 일정을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담당자는 "금리가 치솟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발행 시점 확정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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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년 만기 도래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이라는 점이다. ▲2026년 1월 10조8508억원 ▲2월 11조2925억원 ▲3월 7조1938억원 등 1분기 내에만 총 30조원어치의 회사채가 만기 도래를 앞두고 있다. 올해 1분기 물량(22조7654억원)보다 28.8% 증가한 규모다.
A증권사 채권자본시장(DCM) 헤드는 "지금은 다들 눈치만 보고 있다"며 "금리는 이미 튀었고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기관 투자자들도 상반기엔 적극적으로 매수하겠다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B증권사 DCM 헤드는 "현재 국채 금리 레벨에서는 발행 시기를 미루려는 기업이 상당히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C증권사 DCM 헤드는 "만기 도래 물량이 있어서 조달은 해야겠지만, 올해 초처럼 빨리빨리 발행하자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했다.
수요 측면의 불확실성도 크다. 올해 가장 적극적으로 크레딧 채권을 매수했던 레포펀드 자금의 유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를 기반으로 단기 자금을 조달해 운용하는 레포펀드는 수급이 빠르게 붙는다. 금리 인하기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일반적인데, 금리 상승 국면에서는 단기 운용 수요가 줄어들어 해당 자금이 축소된다.
또 다른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기준금리 동결 환경에서는 크레딧 채권 시장의 자금 유입이 올해보다 내년에 훨씬 둔화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레포펀드 시장 수요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면, 공급은 올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짚었다.
이어 "올해는 발행이 많을수록 언더부킹으로 금리를 끌어내리는 역설적인 구도가 만들어졌지만, 내년은 발행 자체가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달금리 치솟자 '연초 조달' 공식 흔들려
"지금 금리 레벨에선 발행 권하기 어렵다"
크레딧 매수 주체인 레포펀드 자금 유출 우려도
"지금 금리 레벨에선 발행 권하기 어렵다"
크레딧 매수 주체인 레포펀드 자금 유출 우려도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1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