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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회사채 시장은 숫자만 보면 '역대 최대'였다. 연간 무보증 공모 회사채 발행 규모는 약 86조원으로, 2023년(66조원), 2024년(83조원)에 이어 또 한 번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시장 참가자들의 체감은 전혀 달랐다. 상반기와 하반기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연간 통계가 보여주는 온기와 현장의 냉기 사이 온도차가 뚜렷했다는 평가다.
상반기에 '선조달 러시'가 이어졌다. 연초부터 4월까지 이어진 금리 하락 국면에서 우량 기업들이 앞다퉈 회사채 시장을 찾았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서 조달 타이밍을 앞당기려는 수요가 몰렸고, AA급 이상 우량물 중심으로 발행이 집중됐다. 이 시기에 쌓인 물량이 연간 발행 규모를 밀어 올린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하반기 들어 시장은 빠르게 식었다. 국고채 금리가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크레딧 스프레드가 다시 벌어졌고, 민평 대비 높은 금리를 요구받자 발행을 연기하거나 아예 접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SK텔레콤, KCC글라스 등 일부 우량 기업조차 발행 일정을 두고 고심하는 모습이 나왔다. 연말로 갈수록 기관투자가들의 북클로징 부담까지 겹쳤다.
이런 환경에서도 채권자본시장(DCM) 주관 경쟁의 최상단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인베스트조선 집계 기준 2025년 연간 DCM 전체 주관에서 KB증권은 288건, 19조4232억원을 기록하며 1위를 수성했다. 2위 NH투자증권(237건, 14조3606억원)과의 격차는 5조626억원으로, 전년(4조2889억원)보다 더 벌어졌다. 외형이 커진 시장에서 1위 경쟁이 단순 '건수 싸움'이 아니라, 하반기 변동성 구간에서 물량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끌고 오느냐의 싸움으로 바뀌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3~5위권 역시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SK증권이 그 뒤를 이었고, 중위권에서는 키움증권이 약진한 반면 삼성증권이 주춤했다. 순위보다 더 의미 있는 변화는 각 증권사의 'DCM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 주관 건수나 외형 확대보다는, 수익성이 확보되는 딜에 집중하려는 기조가 나타난다는 평가다.
일반회사채 주관 부문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더 선명했다. 신한투자증권이 3위(133건, 7조9480억원)로 올라섰고, 한국투자증권은 4위(177건, 7조7923억원)로 한 계단 내려앉았다. 한국투자증권이 일반회사채 주관에서 신한투자증권에 밀린 것은 시장에서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투자증권 내부에서는 이를 단순 순위 하락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주관 규모 자체보다는 수수료와 실질 수익성을 기준으로 내부 성과를 평가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약한 일반 회사채보다는 PRS나 구조화금융 등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B 전반에서 '외형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흐름이 리그테이블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ABS 부문은 올해 리그테이블 판도를 가른 또 다른 축이었다. NH투자증권은 올해 신디케이션본부 산하에 구조화금융부를 신설했다. ABS에도 공을 들이겠다는 복안이었다. 실제로 주관 실적은 전년 7위(6810억원)에서 2위(2조8434억원)로 뛰어올랐다. 규모 역시 4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KB증권 역시 전년 대비 ABS주관을 크게 늘렸다. 격차가 줄긴 했지만, KB증권을 뛰어 넘기엔 역부족이었단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ABS는 결국 자기자본을 얼마나 과감하게 쓰느냐의 문제"라며 "셀다운을 하든, 수수료를 먹든 일단 담지 않으면 구조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올해 회사채 시장은 상반기 '금리·수급 호조', 하반기 '금리 변동성·수급 경색'이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상반기에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와 함께 기관 자금이 비교적 넉넉하게 유입되면서 크레딧 스프레드가 빠르게 축소됐다. 우량물 위주로 발행이 몰렸고, 주관사 입장에서도 물량을 소화하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국고채 금리가 다시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이 같은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준금리는 현재 동결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올해 크레딧 채권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던 자금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변수다.
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내년에는 채권 시장으로 유입되던 자금이 올해보다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특히 올해 크레딧 수요를 떠받쳤던 레포(Repo) 자금이 내년에는 유입이 아니라 유출로 돌아설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라고 말했다.
발행과 수요가 동시에 얇아지는 하반기 구조 역시 반복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통상 기업들은 만기 도래 1~3개월 전에 재차 발행을 검토하는데, 연초에는 발행과 수요가 모두 몰리는 반면 하반기로 갈수록 수요층과 발행층이 함께 얇아지면서 크레딧 스프레드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환경 변화는 증권사들의 DCM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수수료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에서, 자기자본을 활용해 자산을 안고 가는 '자산 영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내년에는 발행어음, IMA(종합투자계좌) 등 자기자본 활용 여지가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하우스와 그렇지 못한 하우스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내년에도 발행 물량 자체는 적지 않겠지만, 변동성 국면에서 자기자본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수익성과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연간 집계][DCM 전체 주관·인수 순위]
상반기 선조달 러시…하반기 금리 변동성에 급랭
KB 1위 수성·NH 추격…격차는 외려 전년比 확대
일반 회사채 판도 변화…외형보다 수익성 전략
내년도 쏟아질 발행량…자기자본 활용도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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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17일 12:1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