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R&D수장 교체하고 CFO 출신 기획조정담당 선임…'혁신' 보단 '안정'
입력 25.12.18 11:39
사장 4명 포함 총 219명 승진 인사
R&D 수장에 만프레드 하러 선임
기획조정담당에 CFO 출신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 현대차그룹이 예년보다 한 달 늦은 최고위급 정기인사를 발표했다. 그룹의 연구개발(R&D) 핵심 인사들이 빠진 자리엔 외국인 사장을 선임했고, 그룹의 2인자 장재훈 부회장이 맡고 있던 기획조정담당 역할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인사가 담당한다. 송창현 전 사장의 사임으로 그룹 내 내홍을 노출한 AVP본부를 이끌 담당자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은 18일 사장 4명,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 신규선임 176명 등 총 219명의 승진을 포함한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만프레드 하러  R&D본부 차량개발담당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R&D본부장직을 맡는다. 제조솔루션본부와 구매본부를 총괄하던 정준철 제조부문장 역시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은 북미 지역 지배력을 강화한 공로를 인정해 기아 북미권역본부장인 윤승규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 했고, 현대제철은 생산본부장을 맡았던 이보룡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하며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제철의 수장이던 서강현 대표이사는 그룹으로 복귀해 기획조정담당을 맡는다. 현대차그룹은 장재훈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과거 그룹의 핵심컨트롤타워인 기획조정실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바 있다. 기존 기획조정 1·2·3실장은 모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기획조정역할(담당) 역시 장재훈 부회장이 맡으며 그룹의 확실한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새롭게 기획조정담당 역할을 하게 된 서강현 사장은 정의선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그룹 내 정통 재무라인이자 CFO 출신이다. 지난 2023년 사장 승진으로 승진한 이후 현대제철의 대표이사로 발령났지만 3년만에 본사로 복귀하게 됐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소프트웨어 분야를 담당하던 송창현 사장, 하드웨어가 중심이던 양희원 사장 등 R&D 핵심 인력들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기술개발 분야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해당 인사들의 퇴진을 두고 자율주행을 비롯한 미래차 경쟁력 부진에 대한 문책성 인사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CEO가 퇴진하는 과정에선 포티투닷 등 계열사와 본사 임직원들과의 갈등 관계가 부각됐는데, 그룹은 아직 논란의 중심이던 AVP본부 송창현 전 사장의 후임을 선임하진 못했다. 

    그룹은 "송창현 전 사장의 주도로 구축해 온 SDV 개발전략 수립과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자율주행 기술 등의 기술 내재화를 바탕으로 SDV 핵심기술의 양산전개를 위해 차세대 개발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며 "후임을 빠른 시일 내 선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R&D 조직을 정비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는 것은 외국인 만프레더 하러 사장에게 역할이 맡겨졌다. 현대차그룹은 SW를 비롯한 유관부문과의 협업을 통해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Software-Defined Vehicle) 성공을 위한 기술 경쟁력을 제고해 나간다는 계획인데, 추가적인 조직재편과 추후 실무급 인력들의 재배치 등 후속 인사를 통해 R&D 조직의 방향성이 보다 명확해 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번 현대차의 정기 인사는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늦게 시행됐다. 올해 재계 그룹사들이 일정을 앞당겨 내년도 준비에 미리 돌입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일단 R&D부문의 수장을 교체한 것 외엔 눈에 띄는 변화를 감지하긴 어렵다.

    CFO 출신을 중용하는 현대차그룹의 인사 기조는 올해 정기 인사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의선 회장의 '믿을맨'으로 불리는 장재훈 부회장을 보좌할 인사로 CFO 출신의 서강현 기획조정담당 사장이 부상했는데, 그룹의 내년도 방향성은 '혁신'과 '변화'보단 조직의 '안정화'와 사업적 안정성에 보다 방점이 찍힐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자율주행과 전동화 등 미래차 기술의 핵심으로 꼽히는 분야엔 상당한 외부변수가 산적해있다. 미국은 전기차 우선 정책을 사실상 폐지했고, 2035년 시행 예정이던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규정도 다소 완화했다. 자율주행 패권은 선두인 테슬라가 중심이지만, 유수의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 및 중국기업들과의 경쟁으로 글로벌스탠더드를 가늠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변수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미래차 기술에 선두에 서겠단 기조 대신 보다 유연한 전략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