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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내 주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요청한 환헤지 협조와 관련, 주요 업종별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크게 치솟는 상황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업종 특성과 사업 구조에 따라 환율에 대한 시각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수주 통화가 대부분 달러화인 조선업계는 이미 선물환(통화선도계약) 등을 통해 환헤지 비중이 높은 반면, 반도체와 완성차 업계는 해외 투자·현지 생산 확대에 따른 자연헤지(Natural Hedge) 구조로 추가 환헤지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기획재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기아,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주요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환율 변동성 완화를 위한 환헤지 확대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
환헤지는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미래에 발생할 외화 거래의 환율을 현재 시점에서 미리 고정하는 금융 전략이다. 주로 선물환 거래를 통해 이뤄진다. 기업이 환헤지를 위해 선물환을 매도하면 매수한 은행은 달러 현물을 팔게 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높은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조선업계는 전통적으로 환헤지 비중이 높은 업종으로 꼽힌다. 선박과 해양플랜트 수주의 대부분이 달러화로 계약되는 반면, 인건비와 상당 부분의 원가는 원화로 지출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수주 시점과 대금 회수 시점 사이의 환율 변동이 곧바로 수익성 변동으로 이어지는 만큼, 조선사들은 수주 단계부터 선물환을 활용해 환율을 고정하는 방식을 상시적으로 운용해왔다.
실제로 삼성중공업의 경우 조선·해양 분야에서의 수주 잔고가 25조8751억원으로 달러 선물 매도 금액(약 18조원) 규모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100% 환헤지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경우 환헤지 비율을 추가로 확대할 수 있다. 각각 리스크관리팀, 국제금융팀을 조직해 환위험 회피 목적의 헤지거래를 실시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외화표시 매출채권과 매입채무에 대해 주로 만기 2년 이내의 통화선도계약을 활용해 환위험을 회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오션 역시 확정계약과 발생 가능성이 높은 예상거래에 대해 통화선도계약과 통화스왑 등을 활용해 환율 변동이 손익에 미치는 영향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환위험 관리의 기본 축을 자연헤지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환리스크 관리를 위한 별도의 전담 인원을 배정해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영업활동으로 달러화 매출 비중이 높지만, 동시에 해외 생산기지 투자와 장비·소재 구매 등 달러 지출도 상당하다. 통화별 자산과 부채 규모를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환율 변동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수출입 등의 경상거래, 예금·차입 등의 금융거래에서 입금과 지출 통화를 일치시킴으로써 환포지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한다. 일부 잔존 포지션에 대해서만 선물환 등을 활용하며, 투기적 외환거래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매출의 90% 이상이 달러로 발생한다. 달러 수입이 지출보다 많으며, 수입에서 지출을 차감한 잔존 외화 현금흐름을 환리스크 관리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필요 시 선물환 등 외부적 관리기법을 일부 활용한다.
완성차 업계도 유사한 맥락이다. 기아·현대차는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하며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구조적으로 완화해 왔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은 만큼 달러 매출과 달러 비용이 상당 부분 상쇄되는 구조다.
기아·현대차는 외화 유입과 유출을 통화 종류, 규모, 만기를 일치시키는 것을 환위험 관리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환율 전망에 따라 외화자금 수급의 결제기일을 조정하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이용한다. 외환파생상품을 환헤지 수단으로 사용하되, 투기 목적의 거래는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시장에서는 과도한 환헤지가 오히려 파생상품 평가손익 변동성을 키우고 회계, 세무 부담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특히 자연헤지 구조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된 반도체와 완성차 업계의 경우, 추가 환헤지가 실질적인 환위험 축소로 이어지기보다는 단기적인 손익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환헤지 참여를 실질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헤지 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익에 대한 세무 부담을 완화하거나 환위험 관리 목적의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회계·규제상 부담을 낮추는 방안 등이 함께 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단순한 협조 요청만으로는 기업들의 글로벌 자금 운용 전략을 바꾸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율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환헤지 확대가 비용과 리스크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며 "실질적인 인센티브 없이 협조 요청만으로 기업들의 전략이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국내 주요 수출기업 대상 환헤지 확대 요청
조선업종, 수주 달러화로 계약…환헤지 비중 높아
반도체·완성차, 자연헤지로 환율 변동 영향 최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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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