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나선 HD현대로보틱스, 오버 밸류·쪼개기 상장 논란 시험대
입력 25.12.22 07:00
내년 상장 목표…주관사 제안가 8조원대 거론
물적분할 5년 후 상장…HD현대 '쪼개기 상장' 논란 재점화
매출 2000억대·영업익 2억…로봇 기대감 있지만 밸류 부담
  • HD현대그룹의 로봇 계열사 HD현대로보틱스가 상장을 본격화했다. 예상 기업가치가 8조원 수준으로 거론되면서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성장성이 높은 로봇 섹터지만, 아직 수익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과 그룹 내 물적분할 이력에 따른 중복상장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점이 주요 관건으로 꼽힌다.

    HD현대로보틱스는 지난 2일 국내 증권사들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배포하며 코스피 상장 절차에 착수했다. 이달 16일 제안서 접수를 마쳤고, 내달 중 주관사 선정을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이 진행될 예정이다. 목표 상장 시점은 내년이다.

    입찰 과정에서 주관사들이 제시한 밸류에이션은 8조원대 안팎 수준으로 전해진다. HD현대로보틱스는 올해 10월 산업은행과 KY PE로부터 1800억원 규모의 프리IPO 투자를 유치했는데, 당시 책정된 기업가치는 1조8000억원이다. 시가총액 5조원 수준인 두산로보틱스보다 현대로보틱스의 매출이 약 4배 높은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7조원 이상의 밸류를 인정받아도 무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로봇 섹터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여전하지만, 고평가 논란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두산로보틱스 역시 상장 추진 과정에서 레인보우로보틱스, 로보티즈, 유진로봇 등 국내 상장 로봇주들과의 비교 속에 밸류 부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2020년 이후 적자가 이어지면서 일반 상장이 아닌 '유니콘 특례 상장'을 선택했다.

    현대로보틱스는 두산로보틱스와 달리 상장 추진 시점에 실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협동로봇 기업들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점에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이후 실적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요인으로 거론된다. 다만 2024년 기준 연간 매출은 약 2150억원, 영업이익은 2억원대에 그쳐 '성장성'에 기대 몸값을 인정받아야 한다. 

    시장에서는 무엇보다 중복상장 논란이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HD현대로보틱스는 2020년 5월 HD현대(당시 현대중공업지주)로부터 물적분할돼 설립된 회사다. 당시 HD현대는 로봇 사업부문의 독립 경영을 명분으로 물적분할을 단행했고, 분할 이후 HD현대가 지분 90%를 보유한 자회사로 출범했다. 현재 HD현대의 보유 지분은 80%다.

    주관사 선정 경쟁에 나선 증권사들 역시 이 부분을 가장 큰 숙제로 인식하고 있다. 단순한 대기업 계열사 상장이 아니라, 물적분할로 설립된 회사의 상장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시선이 더 엄격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5년간 모회사 주주 보호 노력을 심사하도록 한 규정이 유일하게 정량적인 기준으로 작용해 왔지만, 해당 조항은 올해 7월 삭제됐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물적분할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도 중복상장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HD현대그룹은 과거에도 이른바 '쪼개기 상장' 논란으로 여러 차례 시장의 질타를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을 상장시키면서 꾸준히 실적을 내는 알짜 자회사를 증시에 올려 모회사 주가 저평가 요인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올해 8월에는 중간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의 상장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모회사 HD현대와 자회사 HD현대건설기계, HD현대인프라코어가 모두 상장된 상황에서 추가 상장에 대한 주주 반발을 의식한 결정으로 해석됐다.

    2019년 상장사였던 현대중공업이 한국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바꾸고 중간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 비상장사로 남아 있던 사업회사 현대중공업이 2021년 재상장에 나서자 한국조선해양 주가가 약 11% 하락한 사례도 있다.

    최근 중복상장 논란의 중심에 선 LS에식스솔루션즈가 상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분위기 반전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에식스솔루션즈는 해외 인수 기업이라는 점에서, 물적분할로 설립된 HD현대로보틱스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HD현대로보틱스가 모회사 HD현대의 연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점을 들어 기업가치 훼손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그룹 차원의 잇따른 상장 이력과 물적분할 구조를 감안할 때, 이번 IPO 역시 기존 주주 보호를 위한 대책을 촘촘히 마련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HD현대로보틱스는 로봇 기업이라는 성장성 자체는 큰 이점이지만, 아무래도 HD현대로부터 물적분할돼 나온 기업으로, 중복상장 우려를 해결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