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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최근 열린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과거 20년 손실률(백테스트) 미제시가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제재심 내부에서도 설명의무 위반 사항이 총 2조원대 고액 과징금을 매길 정도의 사인인지에 대한 의문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8일 열린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 제재심에서 금감원과 은행권은 '설명의무 위반'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논의했다. 은행권은 자율배상 등 사후 조치를 강조하는 동시에, 대규모 과징금 부과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설명의무 위반 판단에서도 과징금 감경을 위한 논리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과거 20년 손실률 자료를 설명 자료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 단순한 설명 방식의 차이인지, 아니면 투자 판단에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인지가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백테스트는 과거 지수 흐름을 바탕으로 녹인구간(손실구간) 진입 여부를 가정해보는 가상 시뮬레이션 성격의 자료다. 제재심에서는 이 같은 자료가 투자자가 손실 위험을 인식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에 해당하는지, 또는 시나리오 분석 등 다른 방식의 설명으로 대체가 가능한지를 두고 의견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권은 녹인구간(손실구간) 진입 시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나리오 분석 등을 통해 설명해 왔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감원은 백테스트 역시 투자자가 상품 구조와 위험도를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참고될 수 있는 정보라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특히 은행들이 손실위험 분석 기간을 과거 20년이 아닌 10년으로 임의 변경해 손실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축소 기재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원금손실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검증된 상품이라고 권유해, 투자자들이 이를 안전상품으로 오인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지적대로 과거 20년 손실률을 적용할 경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구간이 포함되면서 홍콩 H지수가 급락해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드러난다. 반면 최근 10년 기준 손실률만 활용할 경우 원금손실 가능성이 훨씬 낮은 것처럼 설명될 여지가 생긴다.
쟁점은 이 같은 '20년 손실률' 기준을 은행들이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지 여부다. 은행권은 과거 20년 손실률을 의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당시 상품 설명 과정에서 손실 위험을 알리는 방식은 통일돼 있지 않았고, 일부 은행은 20년 기준을 활용한 반면 다수 은행은 최근 10년 기준 손실률이나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위험을 설명해 왔다는 것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상품 판매 시 과거 20년까지 소급해 손실률을 제시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었다"며 "10년 기준 손실률을 사용했다고 해서 곧바로 고객 설명이 불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설명의무 위반 여부와 함께 설명 과정에서의 의도성 여부 역시 제재 수위를 좌우하는 요소로 거론된다. 금감원은 '설명하지 않음' 뿐만 아니라 '설명 왜곡·누락' 역시 설명의무 위반으로 제재해 온 전례를 강조하고 있다. 이 경우 설명 방식의 선택 과정이 함께 검토되면서, 설명 과정의 고의성 여부 또한 제재 수위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제재심 내부에서도 백테스트 결과 미제시가 곧바로 대규모 과징금 부과 사안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위반 여부와 별개로 제재 수위의 비례성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는 설명이다.
제재심의위원회는 법적으로 금감원장에 대한 자문기구로, 제재 수위를 직접 결정하는 권한은 없다. 제재심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과 의견들은 향후 추가 심의와 검토를 거쳐 금감원장 판단에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안의 규모와 복잡성을 감안할 때, 제재심에서 두세 차례 추가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위원들에게 관련 자료가 전달된 지 오래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의가 열렸고, 같은 날 MBK 관련 제재심도 함께 진행되면서 이번 회의는 쟁점을 정리하고 인식을 공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이날 제재심에서는 결론 도출보다는 향후 추가 논의를 위한 검토 과제가 주로 제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홍콩 H지수 ELS 안건은 다음 제재심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1월 중순경 다시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5개 은행에 총 2조 원대 과징금을 사전 통보했다. 판매 규모에 따라 KB국민은행이 1조 원대,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3000억 원대, NH농협은행이 2000억 원대, SC제일은행이 1000억 원대 과징금을 통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심 논의 이후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제재 수위가 확정될 전망이다.
'20년 손실률' 미제시, 설명의무 위반 해당하나
백테스트 의도성 놓고 금감원–은행권 시각차
중과징금 해당성 두고 제재심 내부서도 신중론
백테스트 의도성 놓고 금감원–은행권 시각차
중과징금 해당성 두고 제재심 내부서도 신중론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22일 15:3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