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 상장 기지개...'계절성 수요 덕분, 추세적 회복 아냐'
입력 25.12.24 07:00
올해 스팩 신규 상장 20건…하반기에만 17건으로 '쏠림 현상' 뚜렷
'락업비율 확대' IPO 개정안에 스팩으로 이동한 '우회 상장' 수요 부각
"제도 개편 호재 있으나…합병 성공률 개선 없인 반등도 일시적"
  • '개점휴업' 상태에 가깝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이 하반기 들어 기지개를 펴고 있다. 다만 증시에서는 이를 구조적 회복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의무보유확약 확대 등 제도 변화로 직상장 부담이 커지면서 스팩이 대안적 상장 경로로 활용됐고, 그 결과 관망 중이던 수요가 일종의 '우회 수요' 형태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스팩을 '무위험 실적'으로 활용하는 기업공개(IPO) 부서의 연말 계절성 수요도 한 몫 했을거란 평가도 나온다.

    16일 증권가에 따르면 신규 상장이 상반기 3건에 그치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스팩 시장은 하반기 들어 흐름이 달라졌다. 7월 이후 스팩 상장이 빠르게 늘며 하반기에만 17건이 상장됐다. 특히 11월 이후 9건의 상장이 집중됐다. 연간 신규 상장 20건 가운데 85%가 하반기에 몰린 셈이다.

    상장 증가의 배경으로는 IPO 제도 개편에 따른 상대적 수혜가 거론된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의무보유확약 확대 등 제도 변화로 직상장 부담이 커지면서, 상장 일정과 조건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스팩이 대안으로 부각됐다는 평가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을 검토하던 비상장 기업들 사이에서 스팩 합병이 대안 경로로 활용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상장 심사 허들이 높아지면서 기술성 평가 결과의 변동성, 재무요건 충족 여부 등에 따라 상장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됐고,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상장 속도가 빠르고 밸류에이션 협상이 유연한 스팩 구조가 선택지로 부각됐다는 평가다.

    다만 연간 기준으로 보면 반등의 성격은 제한적이다. 15일 기준 올해 스팩 신규 상장은 20건으로, 2022년(45건)과 지난해(40건)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상장 시점만 하반기로 쏠렸을 뿐, 시장 전체의 공급 규모 자체가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증권사 임원은 "스팩은 공모 절차가 복잡하지 않은데도 상장 즉시 1억~2억원의 수수료(인수 수수료의 50%)를 받을 수 있는만큼 연말 IPO부서 실적 관리 차원의 공급도 있다"며 "사실상 원금보장 상품인만큼 연말 북 클로징(장부 결산) 전 펀드 한도를 소진해야 해는 기관의 계절성 수요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스팩의 존립목적은 인수합병(M&A)이지만, 상장 증가가 곧바로 합병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스팩 존속 및 소멸합병은 총 14건에 그쳤다. 같은 기간 스팩 상장예비심사 미제출에 따른 상장폐지는 24건에 달했다. 상장 대비 합병 성과가 뒤따르지 않으면서, 이른바 '잉여 스팩'이 누적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주관사들이 공격적으로 신규 스팩 상장에 나서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장 이후 주가 흐름에 대한 우려도 이어진다. 최근 상장된 스팩 상당수가 공모가 대비 급등세를 보였지만, 합병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유통 물량이 제한되며 수급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평가다. 기관 배정 물량에 3개월·6개월 등 의무보유확약이 적용되면서 상장 직후 유통 물량이 크게 줄어드는 구조가 스팩의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최근 상장 당일 장중 공모가 대비 180% 상승한 삼성스팩12호의 경우, 거래 가능한 물량 가운데 상당수가 확약으로 묶이면서 실질 유통 가능 물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유통 규모가 제한된 상황에서 소규모 거래에도 주가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내년부터는 스팩 상장 단계의 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조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최근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스팩의 경우 의무보유확약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패널티를 면제하기로 했다. 내년 의무보유확약 비율 자체는 40%로 높아지지만, 스팩에는 해당 불이익이 적용되지 않는다. 공모금액이 통상 100억원 내외이고 주당 2000원의 단일 공모가 구조를 갖는 스팩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그럼에도 업계 전반의 평가는 신중하다. 하반기 스팩 시장의 반등은 IPO 시장 회복이라기보다는, 제도 변화가 만든 수요 이동의 성격이 강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합병 성사율 제고와 합병 대상 기업의 질적 개선 등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재의 반등이 지속적인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반기 사실상 멈춰 섰던 스팩 상장이 하반기에 몰린 것은 시장 회복이라기보다 상장 전략 변화로 인한 일종의 반사 효과"라며 "합병 성과 없이 상장 숫자만 늘어나는 흐름이 반복된다면 스팩 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