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발행어음으로 활동반경 넓어진 증권사…크레딧펀드 입지 타격 걱정
입력 25.12.26 07:00
IMA·발행어음 인가 본격화…이론상 북 140조까지 확대
체급 달라지는 증권사…북 2배면 리스크 감수 능력도 커져
크레딧펀드나 증권사나 결국 대기업 네트워크 핵심인데
영역 겹치다 보니 내년 이후 시장지형 변화에 시선多
  •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신규 인가를 속속 받으면서 벌써부터 내년 영업전선에 힘이 실린다. 운용한도(book)가 대폭 불어나는 만큼 종전보다 빠르고 공격적으로 기업 고객을 공략할 수 있게 된 덕이다. 

    동시에 크레딧펀드에 미칠 영향에도 시선이 쏠린다. 증권사와 타깃 시장이 다소 겹치는터라 크레딧펀드들의 영업 지형이 위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18일 한국투자증권은 IMA 사업자로서 국내 첫 상품을 출시했다.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IMA 사업자로 지정된 미래에셋증권도 연내 1호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IMA는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종투사로 지정된 초대형 증권사가 원금 지급 의무를 조건으로 고객 예탁금을 투자해 수익을 얻는 계좌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 기조를 내건 만큼 금융당국도 증권업계 모험자본 공급 역량 지원에 속도를 내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17일엔 하나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이 각각 발행어음 사업자 인가를 획득했다. 발행어음 사업자는 자기자본 200% 한도 내에서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해 영업에 활용할 수 있다. 지날달 인가받은 키움증권을 포함하면 현재까지 7개 증권사가 발행어음 인가를 받았는데, 심사 중인 메리츠증권과 삼성증권까지 가세할 경우 최대 9곳으로 불어날 수 있다. 

    투자업계에선 발행어음 사업자가 7곳 이상으로 늘고, IMA 사업자 2곳까지 등장하면서 증권사들의 북이 얼마나 늘어날지 꼽아보고 있다. 보수적으로도 추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북이 100조원 규모에 달할텐데, 이론상으로는 140조원 이상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형 증권사 한 임원은 "IMA의 경우 예금과 유사하니까 증권사에 수신 기능이 따라붙는 효과가 있다"라며 "발행어음은 아예 200% 한도가 잡혀 있는데, IMA 사업자도 이론상으로는 자기자본 2~3배까지 북을 늘릴 수 있어 은행 예대율처럼 보수적으로 관리해도 2배까진 가능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자연히 이렇게 만들어진 유동성이 어디를 향할 것이냐가 다음 화두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이 모험자본 공급의무 비율 등을 규정하고 있긴 하나, 대기업 관계 기반 기업금융(IB) 비즈니스 강화로 이어질 거란 관측이 많다. 발행어음이냐 IMA냐 상품 구분과 무관하게 증권사 대차대조표가 커지면 커질수록 대기업 요구를 받아줄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장면들이 이미 등장하고 있다는 평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롯데그룹에 단독으로 1조3000억원 규모 자금을 공급했다. 만기가 도래한 6600억원 규모의 롯데케미칼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단독으로 리파이낸싱(차환)한 데 이어 롯데건설이 발행하는 7000억원 규모 영구채까지 인수했다. 초대형 증권사라 해도 유동성 위기가 반복되는 그룹 익스포저(노출도)를 단숨에 1조원 이상 늘리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북이 10조원에서 20조원으로 확대되는 국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크레딧펀드들의 입지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뒤따른다. 증권사와는 제도적 기반이나 조달 구조, 운용 테마가 딴판이긴 하다. 그러나 증권사나 펀드나 국내 자본시장에서 최대 영업처는 결국 대기업 그룹사로 수렴하는 편이다. 돈 급한 대기업들에 누가 더 넉넉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느냐를 따진다면 북이 커지고 있는 증권사 아니겠냐는 것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PRS, 영구채에서 수수료를 깎아줘도 다음 회사채 주관 물량이나 계열 기업공개(IPO) 주관 등 다른 IB 딜에서 보상받는 식으로 패키지를 짤 수 있지 않나"라며 "단일 딜에서 수익률을 뽑아내지 않아도 장기 관계로 끌고 가면 된다. IMA, 발행어음 라이선스가 늘면 크레딧 펀드보다 공격적인 조건으로 더 빠르게 자금을 공급하기 수월해진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관련 운용인력들 사이에서도 올 한 해 쏟아지는 PRS 계약을 두고 고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크레딧펀드의 핵심 투자처 중 하나인 메자닌이나 증권사들이 제공하는 PRS 계약이나 발행사 상황이나 요구 조건에 따라 구조화 방식만 달라질 뿐 실질은 고금리 대출에 가깝다. 정부의 중복상장 규제 움직임으로 기대 수익률 상방이 막혀가는 와중에 하방에선 증권사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구조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우량 대기업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진입가격, 하방 보장수익률 등 구조화 협상을 잘 이끌어내는 게 크레딧펀드들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였는데, 증권사들이 해결사로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이 무척 커졌다"라며 "올해 결성된 크레딧펀드 자금이 적지 않은데 내년 이후로 시장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