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환율 변동성 확대에…CET1 관리에 총력 기울이는 은행권
입력 25.12.29 07:00
한때 연고점 근접한 환율에 긴장 고조
외화자산 RWA 불어나 CET1 관리 시험대
연말들어 미사용 한도·자산 조정 총력
  • 연말 결산을 앞두고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은행권이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에 분주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외화자산 비중이 높은 은행들의 위험가중자산(RWA)이 커지고 있어서다. RWA가 커질 수록 CET1 비율 관리는 더욱 어려워지는 구조인 만큼, 은행들은 연말을 앞두고 자산을 줄이는 등 관리에 힘쓰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80원대 중반까지 오르며 급등세를 나타냈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인 지난 4월 8일 기록한 1487.07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사실상 연고점에 근접한 흐름이다. 연말을 앞두고 수입업체 결제 등 달러 수요가 많은 가운데 매도 물량은 나오지 않으면서 환율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지난 24일엔 환율이 하루만에 1450원대까지 급락했지만 변동성은 오히려 커졌다는 분석이다. 외환당국의 고강도 개입에 전 거래일 대비 20원가량 급락하며 수직으로 하락했지만 환율이 연고점을 넘어설 상황이 되자 당국에서 강한 수위의 구두개입성 발언을 내놓은 영향이지 하락추세로 반전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이다. 되레 당국에서 잇따른 수급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환율이 안정되지 않았던 만큼 예측 하기가 더 어려워졌단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환율이 빠르게 움직이자 은행권의 긴장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은행이 보유한 외화대출 등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늘어난다. 이는 CET1 비율의 분모인 RWA를 키워 결과적으로 CET1 비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환율 상승이 곧바로 자본비율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인 셈이다. CET1 비율은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기도 하는 만큼 은행이 더욱 신경써서 관리하는 지표다. 

    증권가에서는 현재 환율 수준이 연말 자본비율에 상당한 압박을 주는 구간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은행마다 차이는 있지만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CET1 비율이 약 2bp(bp=0.01%포인트)씩 하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분기 말 환율이 약 1400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환율 수준(1480원 안팎)은 15~16bp의 하락 요인을 이미 안고 있는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떨어지길 강력하게 바라고 있는데, 외화자산이 많아질수록 리스크가 부풀려 보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사 등 기업 여신에서 외화자산 비중이 높은 특징을 보이는데, RWA 규모가 커질수록 CET1 관리가 까다로워진다는 설명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주주환원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CET1 비율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각 은행들은 대체로 13~13.5% 수준을 CET1 목표치로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자본을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해 왔다. 

    다만 최근 환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데다, 통상 4분기에는 판관비 증가로 실적이 상대적으로 둔화되는 구조여서 자본비율 하락 압력이 커지는 국면이다. 여기에 배당 반영에 따른 자본 감소 효과와 과징금 반영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연말 CET1을 둘러싼 긴장감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행권은 일찌감치 자산 관리를 강화하며 CET1 비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대출을 무작정 줄이기보다는 위험가중치가 높은 자산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익스포저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요 관리 대상 가운데 하나는 기업의 미사용 한도다.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약정만으로 RWA를 차지하는 한도대출이 대표적이다. 은행들은 우량 기업 고객을 중심으로 사용 계획이 없는 한도에 대해 양해를 구해 약정 규모를 줄이거나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도 굳이 연말까지 한도를 들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연말 결산을 앞두고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보유 예금으로 대출을 상환하는 우량 기업들의 움직임을 기대하기도 한다. 일부 우량 기업들은 연말 결산 시점이 오면 대출 잔액을 일부러 줄이기도 하는데, 은행 입장에서는 자산 관리에 나선 상황에서 이러한 수요 감소 흐름이 맞물릴 경우 CET1 방어에 추가적인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다. 

    자산 규모 자체를 줄이지 않더라도 RWA 부담이 큰 자산 비중을 낮추는 방식으로 운용 전략을 조정하기도 한다. 위험가중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다는 설명이다.

    변수는 외환당국이 내놓은 정책 수단과 구두개입 가능성이다. 외환당국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종합적인 정책 실행 능력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경고장을 날렸고, 이어 기획재정부는 해외 주식을 매도해 국내 주식에 투자할 경우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1년간 비과세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다만 동시다발적인 정책 공세에도 달러 강세나 위험 회피 국면이 이어질 경우 환율이 되돌림을 보일 수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아,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한 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변수인 상황에서 결국 할 수 있는 건 자산 관리뿐”이라며 “연말까지는 이런 관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