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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은행 대출과 공모 회사채 사이에서 사모신용(Private Credit·Private Debt)이 새로운 자금 조달 경로이자 투자처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공개 시장을 거치지 않고 차입자와 투자자가 사적 계약을 통해 직접 자금을 연결하는 구조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기업금융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연기금과 국부펀드, 보험사에 이어 증권사까지 시장 저변이 넓어지는 모습이다.
사모신용은 통상 펀드 형태로 자금이 집행된다. 기업에 대한 직접 대출뿐 아니라 구조화 금융, 인프라 금융 등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급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자본, 유동성 규제가 강화된 데다 저금리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투자 수요가 늘어난 점이 성장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미국 중심 시장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는 가운데, 신흥국 사모신용 시장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올해 들어 신흥국 사모신용 대출 규모는 180억달러(약 26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고점이었던 160억달러(약 23조원) 규모를 넘어선 수치다.
신흥국 거래는 금리가 최대 17%에 달하는 반면 평균 레버리지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약 3배 수준으로, 미국(4~5배)과 비교했을 때 낮은 편이다. 차입매수(Leveraged Buyout·LBO)보다는 기업 운영자금 성격의 대출 비중이 높아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글로벌 흐름은 국내 시장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국민연금과 행정공제회,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이미 대체투자 포트폴리오 내에서 사모신용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투자 방식은 글로벌 대형 운용사의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에 출자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직접 대출보다는 선순위 크레딧 중심으로 접근해 변동성을 낮추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보험사 역시 자본 규제를 감안해 선순위 사모신용 자산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국내 증권사도 조직 차원에서 대응에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사 가운데 비교적 선제적으로 사모신용 전담 애널리스트를 채용했다. 해당 인력은 사모신용 시장 전반에 대한 톱다운 분석과 함께 글로벌 운용사·펀드, 개별 딜 분석을 담당한다. 내부적으로는 개인고객그룹과 종합금융본부, 리스크관리본부를 지원하고, 외부적으로는 주요 운용사와 기관투자가(LP)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 역할도 수행한다. 사모신용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독립적인 금융시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김대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레이팅스 상무는 "자금 공급 수요 측면에서는 금융기관들의 리스크나 자본 관리를 고려했을 때 기업들의 사모신용을 통한 자금 조달 니즈도 커질 수 있다"며 "가령 부동산 개발업의 경우는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사모신용을 통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향후 추가 인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환경 역시 사모신용 시장 확대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통 채권만으로는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를 갖춘 사모신용에 대한 수요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채권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포트폴리오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사모신용을 활용하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리스크에 대한 경계도 커지고 있다. 사모신용 시장이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을 연결하는 고리로 작용하면서 스트레스 발생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다.
김 상무는 "충분한 담보와 보수적인 약정 구조를 전제로 할 경우 단기적인 리스크 관리 가능성은 높게 본다"면서도 "시장 성장 속도와 금융기관과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은행 유동성 규제 빈틈 파고든 사모신용
연기금·KIC 중심으로 국내 투자 저변 확대
수익률 매력 유효…연계 리스크는 점검 대상
연기금·KIC 중심으로 국내 투자 저변 확대
수익률 매력 유효…연계 리스크는 점검 대상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2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