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수주·증설 후폭풍…뒷수습 본격화한 LG엔솔·SK온
입력 25.12.30 07:00
美 전기차 수요 둔화에 JV '순차 정리'
과도한 생산설비 확장에 버티기 한계
ESS 전환 기대 걸지만 아직은 안갯속
  • 국내 배터리업계가 결국 뒷수습에 들어갔다. 미국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법인(JV)을 정리하는 등 사업 전략을 재조정하고 나선 것이다. 전기차 업황이 머지않아 회복될 것으로 점치며 버텨왔던 확장 전략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미국 보조금과 현지 완성차와의 계약을 지나치게 낙관한 채 증설을 확대한 것이 경영 판단의 일차적 문제였고, 그에 따른 후폭풍을 지금에서야 수습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단 평가가 나온다.

    지난 24일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혼다와 합작으로 세운 미국 배터리 공장을 혼다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L-H 배터리 컴퍼니'의 건물 자산을 처분하기로 했으며, 거래 규모는 4조2211억원이다. 설비투자(CAPEX) 부담을 손익에 반영하기 어려워지자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산 처분을 통해 유동성은 확보하면서 혼다와의 생산과 JV 협력 구조는 유지하는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해당 건물 자산을 '매각 후 재임대(Sales and Lease Back)' 방식으로 혼다에 임차료를 지급하며 사용할 예정이다.

    처음부터 LG엔솔이 혼다와의 JV 계약을 맺은 것을 두고 전략적 실익이 흐릿하다는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혼다는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파트너로 보기 어렵다"며 "애초에 고정비만 키우는 선택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LG엔솔은 미국 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3공장을 인수해 단독 운영하겠다 밝히기도 했다. JV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장 소유와 운영 주체를 분리해 각자 운영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SK온도 포드와의 동행을 끝냈다. 이달 11일 '블루오벌SK' 합작법인을 백지화하고 생산 시설을 분리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켄터키 1·2공장은 포드가, 테네시 공장은 SK온이 가져간다. SK온은 테네시에 집중하며 고객을 다시 모아보겠다는 전략이다. 당장 이익 개선이 담보되는 그림은 아니란 평가다.

    시장에선 국내 배터리업계가 뒤늦게나마 '상황 정리'에 나섰단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가격 공세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고, 미국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도 올해 9월 종료된 상황이다. 내년부터는 보조금 축소에 따른 수요 위축을 배터리사들이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의 부진이 생각보다 장기화할 것으로 점쳐지고, 내후년에도 업황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더 빨리 생산설비를 감축하는 등 대응에 나섰어야 했다"며 "올해 초 유상증자 등으로 자금을 수혈해 버티다 이제라도 상황 정리에 나선 모습"이라고 했다.

    배터리 3사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와 체결했던 약 10조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이 전격 해지됐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6일에는 미국 배터리팩 제조사 FBPS(Freudenberg Battery Power Systems)와의 3조9000억원가량의 계약 또한 해지된다고 발표했다. 장기 수주 계약마저 잇따라 흔들리기 시작했단 방증으로 해석된다.

    3사 모두 과도하게 늘린 생산설비를 단계적으로 조정할 것으로 점쳐진다. 가장 보수적으로 생산능력(CAPA)을 늘린 삼성SDI조차 가동 여력이 남아 돈다. 최대 고객사인 스텔란티스의 1년 치 물량을 받아도 2개월 가동이면 소화가 가능할 정도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ESS(에너지저장장치)용으로 전환하는 등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불필요한 생산설비들은 순차 정리 내지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국내 3사가 제시해 온 공장 가동률 전망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가장 보수적으로 생산설비를 늘린 삼성SDI조차 가동률이 낮은 상황인데, LG엔솔과 SK온이 GM·현대차향 물량을 근거로 제시하는 가동률 수치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SK온 합병효과 발표나 LG화학의 LG엔솔 지분 EB(교환사채) 발행 때 제시된 수치는 거래 설득 성격이 강한 만큼, 기관에서 이를 전부 신뢰하진 않는다"고 했다. 

    배터리 업계는 ESS를 새로운 돌파구로 거론하는 모습이다.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고, 재생에너지 연계 프로젝트가 증가하면서 ESS 시장 성장 기대가 부각되고 있다. 

    전망에 대한 시각은 다소 나뉘는데 아직까진 이 시장 또한 보수적으로 봐야 한단 목소리가 많다. 수요가 늘고는 있지만 전기차 부진을 온전히 대체할 '해법'이 되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ESS는 LFP(리튬인산철) 중심 시장이지만 국내 3사 생산능력 95% 이상이 3원계 배터리에 맞춰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기준 3사를 합쳐도 LFP 생산능력은 25기가와트시(GWh) 수준에 불과한 반면, 3원계는 600~800GWh 규모다. ESS 수요 확대가 현실화하더라도 활용 가능한 생산설비는 제한적이며, 대부분의 3원계 라인이 여전히 놀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기차용 생산라인을 ESS 전용으로 전환하거나 LFP 중심 체제로 옮기는 데에도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소요될 전망이다. 또 미국 ESS 시장의 상당 부분은 이미 중국산 LFP가 차지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이 가격 경쟁을 기반으로 진입하기에도 부담이 있다.

    기대를 담는 시선도 있다. 외국계 증권사 JP모건은 미국의 ESS 시장은 관세 및 안보 문제로 중국 기업들의 유입이 차단될 가능성이 커 한국 기업의 점유율이 자연스럽게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맥쿼리증권은 전기차 수요 둔화는 '상수'이지만 AI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ESS 시장 개화는 '변수'가 됐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