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보다 '건전성 확보'가 먼저…롯데바이오 주주배정 증자서 '실권' 선택한 롯데지주
입력 26.01.02 07:00
롯데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 미참여한 롯데지주
신규사업 지원보다 재무구조 개선에 역량 집중
바이오의약품 공장 건설에 4조 이상 투입 계획
호텔롯데 외 다른 계열사가 우군 나설지 주목
  • 롯데그룹의 바이오 계열사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유상증자에 최대주주인 롯데지주가 불참한 대신 호텔롯데가 출자자로 등장했다. 이제까진 롯데지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자금 조달을 적극 지원해 왔지만, 지주의 자금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 내 지원 여력이 있는 계열사가 바이오 키우기에 동원되고 있단 평가다.

    12월 진행된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과정에선 최대주주인 롯데지주의 지분율이 79.94%에서 60.74%로 조정됐다. 롯데바이오로직스 법인 설립 당시엔 롯데지주와 롯데홀딩스가 8대2의 비율로 출자했고, 이후 주주배정 방식으로 증자를 추진했던 만큼 지분율 변동이 크지 않았지만 이번 증자에선 변동 폭이 컸다.

    이는 최근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롯데지주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실권주 일부가 호텔롯데에 배정된 영향이다. 호텔롯데는 307만6890주의 실권주를 인수해 롯데바이오로직스 지분율 19.07%를 확보한다. 롯데지주(60.74%), 롯데홀딩스(20.11%)에 이은 3대 주주가 됐다.

    현행법상 ‘상장사’는 주주배정증자 진행 결과 실권주가 발생하면 일반 공모를 진행하거나 신주 발행을 철회하고 다른 자금 조달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비상장회사이기 때문에 실권주를 이사회 결의만으로 호텔롯데에 배정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지배구조 개편과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해 롯데지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주주배정증자를 진행했으나 사실상 호텔롯데에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비상장사의 실권주 처리 방식은 기업의 판단을 따른다"면서도 "현행법의 취지가 대주주나 특정 기관, 개인에 주식을 몰아주지 말라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이를 무색하게 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도 "당장은 절차상의 문제가 없겠으나, 특정 회사의 주식을 호텔롯데가 단독으로 확보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와 관련한 안건을 결의한 이사들이 '주주 충실 의무'를 위반했다고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호텔롯데가 확보한 신주 가격은 6만9679원으로, 이를 기반으로 산정한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는 약 1조1241억원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자산총액인 1조2018억원과 유사하지만 다소 낮은 수준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외부 기관의 평가에 따라 신주 발행 가격을 책정했다는 입장이다. 만약 롯데바이오로직스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피어그룹으로 지정해 조 단위 몸값을 내세운다면, 기업가치가 더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롯데지주는 다른 계열사에 바이오 계열사 지원을 맡기며 한 발 뒤로 물러선 모습을 연출했다. 재무건전성 강화를 당면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신규 사업 지원보다 재무 구조 개선이 우선이란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에 재원을 공급해온 석유·화학, 건설 등 계열사는 연말 자금 조달로 당장의 숨통은 텄지만, 실질적인 현금 창출 능력은 사실상 변동이 없다. 롯데지주 자체적으로도 올해 1월까지 8000억원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재무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지주가 2026년 정기인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고정욱 사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세운 점도 재무 지표 개선과 현금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고정욱 사장은 그동안 이사회에 지속해서 참석하며 롯데지주가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의 안건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용평가사 한 관계자는 "롯데지주가 롯데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선제적인 재무 구조 관리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라며 "주요 계열사의 수요 부진, 증설 부담으로 롯데지주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상황에서 자체적인 재무 부담도 커지면 구조적 후순위성 등으로 인해 신용등급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완공하기까지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만큼 자금 조달 우군으로 또 다른 계열사가 나설지도 관심이다. 특히 롯데그룹 3세인 신유열 부사장이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에 내정된 만큼 승계 발판을 만들기 위한 그룹 차원의 지원은 확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 롯데물산은 호텔롯데와 함께 롯데건설의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서 3000억원가량의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하며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호텔롯데는 보유한 토지, 건물은 물론 롯데렌탈 지분 매각을 타진하며 자금 마련에 분주했다.

    신용평가사 한 관계자는 "내년 롯데렌탈 지분 매각이 마무리되면 호텔롯데에 유입될 자금은 8000억~90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라며 "현금 창출 능력과 비교하면 차입 부담이 높은 편이지만, 자산 담보 등을 고려하면 다른 계열사를 지원할 역량은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