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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9월부터 미국 법인들의 회장·이사회 의장직을 맡게 됐다. SK하이닉스 미주법인으로 실리콘밸리에서 현지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SK하이닉스아메리카' 회장직과 그룹의 북미 대관업무를 총괄하는 'SK아메리카스'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각각 겸하게 된 것이다.
해당 사실은 11월 중순 SK㈜ 분기보고서 공시로 알려졌다. 트럼프 2기 이후 현지 대관이 무척 중요해진 데다 SK하이닉스를 둘러싼 반도체 공급망 부담이 예사롭지 않아 언뜻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영 최일선에 있는 그룹 총수가 해외 자회사에 직접 '적(籍)’을 두는 경우가 극히 이례적이다 보니 배경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르내린다.
일반적이지 않은 해외 영업법인 '회장'·대관조직 '의장'
통상 대기업 그룹사 지배구조 관행과는 결이 다르다. 오너 경영인은 국내 지주회사나 핵심 계열사에서 회장이나 대표이사직을 맡되, 이마저도 미등기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글로벌 성과가 중요한 계열사라 해도 해외법인은 현지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거나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두는 식으로도 관리가 가능한 덕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의 반도체·가전 사업 글로벌 확장 시점에 미국 법인을 직접 챙긴 전례는 있으나 따로 직을 신설하거나 직접 이사회에 참여했단 기록까진 확인되지 않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미국 진출 드라이브를 걸면서 현지 품질경영 목적으로 출장길에 자주 오르긴 했으나, 마찬가지로 등기임원까지 겸직하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최 회장은 직접 SK하이닉스아메리카 회장직을 맡았다. 미국 현지 영업과 마케팅이 핵심 기능인 법인이라 그간 본사 사장·부사장급 인사가 대표를 맡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운영되는데 오너 경영인이 직접 직을 맡아 챙기게 된 것이다. 올초 선임된 류성수 SK하이닉스아메리카 CEO나 전임 김주선 CEO 모두 SK하이닉스 내 글로벌세일즈마케팅(GSM) 출신임을 감안하면 눈길을 끌 만하다. 영업통들이 총괄해온 자리에 그룹 회장님이 함께 하게 된 셈이다.
부회장 승진 가능성까지 거론된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이 여전히 한국 본사 수장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최 회장 직함만 중첩이 계속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최태원 회장은 이미 지난 10여년 동안 SK하이닉스 회장직(미등기)을 겸직해왔다. 새로 맡게 된 SK하이닉스아메리카까지 포함하면 본사와 해외 영업법인 회장직을 각각 맡는 구조다. 그룹 전체로 넓혀보면 지주사(SK㈜)에서 시작해 손자회사(SK하이닉스), 증손회사(SK하이닉스아메리카)로 내려가면서 계속 회장직을 맡는 조금은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SK아메리카스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다. SK아메리카스는 과거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이 현지에 설립한 SK USA가 전신이다. 작년 SK하이닉스와 SK㈜를 포함해 4개 계열사가 600억 규모 증자를 통해 지배구조를 재편하며 현재 사명으로 변경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자본 규모도 협소하고 관련 정보나 공시 내역이 미미해 알려진 내용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계열사들이 십시일반 자본금을 출자한 뒤 북미 총괄 대관조직으로 격상했고, 지금은 현지 로비스트들을 대거 영입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이 회사 이사회를 최 회장이 직접 주재하게 된 것이다.
이사회 의장직은 회장직에 비해 책임 부담이 큰 자리로 받아들여진다. 회장직은 미등기 상태로 상징적 리더십만 부여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의장직은 직접 이사회를 주재하고 책임지는 역할까지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과 달리 미국에선 정관이나 이사회 결의에 따라 등기임원이 아닌 채로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경로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상징적 지위라 해도 현지 체류 필요성이 크게 커졌다는 시각이 나온다. 역시 국내 다른 그룹사에선 전례가 없는 행보다.
글로벌 반도체 위상 생각하면 예외적 상황이긴 한데
최태원 회장이 미국 현지 활동을 늘려야 할 명분이 없지는 않다. 현재 SK하이닉스 반도체 사업은 SK그룹을 넘어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다. 단순 민간 기업이라기에는 인공지능(AI)과 같은 각국 전략자산 육성과 공급망 안보에서 핵심 밸류체인으로 기능하는 덕이다. 내년 슈퍼사이클(초호황)이 본격화하면 주춤하던 한국 경기를 소위 멱살 잡고 끌어올릴 거란 기대까지 쏟아진다.
정부도 특혜 논란을 불사하고 금산분리 완화까지 논의하며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할 기세로 지원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여러모로 최 회장의 역할과 활동 무대가 국경 밖 미국으로 넓어져야 할 필요가 큰 시점인 셈이다.
실제로 최 회장이 1년 전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직을 맡으면서부터 관련 작업이 트랙에 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인텔에서 낸드 사업을 인수한지 5년만에 첫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었다.
예상대로 전방 AI 작업량이 폭증하면서 솔리다임은 흑자로 돌아섰고, 올해 8월 SK하이닉스가 낸드 사업 소유권을 완전하게 넘겨받은 뒤 최 회장은 의장직을 사임했다. SK하이닉스아메리카가 솔리다임에 넘겼던 연구개발(R&D) 팹리스도 이 시기에 SK하이닉스아메리카로 재배치됐다. 인수 후 통합작업(PMI)이 완성되는 시점에 맞춰 미주법인 SK하이닉스아메리카를 회장급 조직으로 새단장한 과정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아메리카는 차로 10분 거리에 엔비디아를 비롯해 애플, AMD, TSMC 등 수많은 협력사·고객사를 두고 있기도 하다. SK하이닉스의 고객 관계나 공급계약, 팹(Fab) 운영 전략은 미국과 같은 최대 우방국 이해관계와도 직결돼 있다. 기술 협상이나 투자 결정, 이를 둘러싼 현지 대관까지 그룹 오너가 전면에 나서야 할 사안이 늘어나는 국면이다 보니 과거 다른 그룹사들의 글로벌 경영과 직접 비교하기 힘든 구조라는 평도 나온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작년 초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대비해서 SK하이닉스가 현지에 제공할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이냐를 두고 R&D센터나 패키징 공장 투자 정도가 거론됐었다"라며 "지금은 미국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내세워서 고객사들이 웨이퍼 단위 공급계약을 요구할 정도로 사안이 커지고 있다. 이만한 사안을 책임지고 협상할 수 있으려면 오너가 직접 나서는 게 합리적인 선택지이긴 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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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직함 만큼 길어질 美 체류시간 두고 해석 분분
그러나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현지 직함이 늘어날 필요에 대해선 여전히 다양한 해석들이 나온다. 단순히 직함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이로 인해 현지 체류시간이 늘어날 개연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개인사와 연관 짓는 시선도 있다. 마침 지난 10월 대법원 판결로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이 확정됐다. 10여년 동안 계속된 갈등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운신의 폭이 늘어나는 동시에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이 최 회장의 법적 배우자가 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향후 그룹 승계나 상속을 둘러싼 조건에도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보니 재계는 물론 투자업계의 관심이 식기 어려운 사안으로 통한다. 김 이사장은 미국 시민권자이고 자녀들의 국적도 미국으로 알려져 있어, 미국이 새로운 터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올해 6월 SK그룹 리밸런싱(사업 조정) 작업이 한창일 때 국내에서 동거인 수행 역으로 파견된 인력들이 재배치됐다는 소식과 함께 대법 판결 이후 행보에 대한 여러 추측들이 회자했다"라며 "과거 SK하이닉스 우시법인을 중심으로 최 회장 활동 무대가 중국으로 옮겨갈 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시선도 있다"라고 전했다.
최 회장이 SK그룹 수장으로서의 역할보다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리더십을 더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SK'를 글로벌 시장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브랜드로 만들어준 공로가 있다. 리밸런싱 이전 부회장단이 수년 동안 전면에서 수많은 M&A를 치르고도 손에 쥐지 못한 성과다. 그간 국내 대기업 중 해외 기관투자가나 산업계에서 이만한 정체성을 확보한 기업은 삼성전자나 현대차 정도에 불과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삼성전자를 왕좌에서 한 번 끌어내린 것만으로도 막대한 존재감을 확보했는데, 추론 시장이 개화하면서부터는 회사가 AI 산업 질서 전면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지금도 빅 테크들은 메모리 병목 해소를 위해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앞에 대기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SK하이닉스 회장 직함이 엔비디아의 젠슨 황,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처럼 특정 기업을 넘어 산업 질서의 변화를 이끄는 글로벌 경영 리더와 같은 맥락에서 거론될 수 있을 만큼 무게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지난 2년여 동안 실질적인 그룹 살림은 사촌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도맡고 있는 참이기도 하다. 재무사정을 짓누르던 재무적투자자(FI)들과의 관계도 순차로 청산 중이고, 실패한 사업장을 과감히 정리하면서 리밸런싱 성과도 차츰 드러나고 있다. 내치 기반이 다져진 만큼 최 회장이 최대 먹거리인 반도체를 직접 챙기기 위해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제반 여건도 갖춰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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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상 전례 없는 해외 자회사 회장·의장 겸직
SK하이닉스 위상 감안하면 美 활동 중요성 커지나
현지 직함 늘어나면서 체류 필요성도 커졌단 분석
개인사 결부 등 해석 제각각…그룹보단 AI·반도체 산업 리더십 무게?
SK하이닉스 위상 감안하면 美 활동 중요성 커지나
현지 직함 늘어나면서 체류 필요성도 커졌단 분석
개인사 결부 등 해석 제각각…그룹보단 AI·반도체 산업 리더십 무게?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2월 29일 07:2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