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존치는 했지만 금감원 눈치보기 급급?…치열해지는 영역다툼
입력 26.01.08 07:00
조직개편 일단락에도…'권한' 둘러싼 긴장감 여전
이찬진 금감원장, 신년사에서 '주가조작 근절' 강조
최근 업무보고서도 조사권한 확대 언급해 '재점화'
금융위, 금감원 견제에 쏠린 에너지…정책기능 약화 우려도
  • 지난해 금융당국 조직 개편 논의는 일단락됐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간 권한을 둘러싼 긴장 관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가 거시적 관점의 금융 정책 마련보다 금감원 견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주가조작 근절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특히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을 중심으로 조사 강도와 속도를 높이고, 일반 조사 사건 역시 지체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조사 프로세스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신년사에서 '생산적 금융' 성과를 전면에 내걸고 자본시장 활성화를 하위 과제로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금감원이 주가조작 근절을 보다 전면적인 과제로 부각한 셈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를 두고 금감원이 그간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조사 권한 확대 기조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 원장이 최근 업무보고에서 언급한 인지수사권 발언도 재차 거론되고 있다. 이 원장은 앞선 금융위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감원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특사경)에 인지수사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인지수사권 부여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며 민간 조직인 금감원의 권한 오남용 우려를 제기했다.

    금감원 특사경은 검찰 지휘를 받는 조직으로, 수사 과정에서 실무 역할을 수행할 뿐 수사 개시나 강제 수사에 대한 판단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조사 과정에서 혐의가 포착되더라도 검찰 배당과 승인 절차를 거쳐야 수사가 진행되는 구조다. 금감원 내부에서 인지수사권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배경도 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금융위는 수사권 부여 문제에 대해 민간 기관의 권한 확대 범위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번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감원장과 금융위원장의 발언 역시 이러한 기존 입장이 재확인된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양 기관의 조직 논리가 충돌한 장면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양 기관 간 긴장은 인지수사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금융사고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 권한을 둘러싼 논쟁 역시 오래된 이슈다. 제재와 관련된 현안은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지만, 최종 제재는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금융위가 의결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가 제재심 결과를 직권으로 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어 잡음이 일었다.

    지난해 금융감독체계 조직개편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도 제재 권한을 둘러싼 양 기관의 긴장 관계가 표면화됐다. 당시 제재심과 중징계 권한의 귀속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며 감독 권한 구조 전반에 대한 논쟁으로 확산됐다. 조직개편 논의는 일단락됐지만, 제재 권한 문제는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이찬진 원장은 취임 이후 금융소비자보호를 금감원의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소비자보호 거버넌스 개선과 내부통제 강화를 강조해 왔다. 이 같은 움직임은 감독 영역 전반에서 금감원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신호로, 금융위원회가 또다시 금감원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해석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조직개편을 계기로 금융위 해체 가능성 등 구조적 불안이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금융위 내부에 남아 있는 조직 존립에 대한 불안감이 금감원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도가 장기화될 경우 금융위가 본연의 역할인 거시적 금융 정책 수립과 제도 설계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올해 금감원뿐 아니라 금융위 역시 조직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정책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위가 금감원 견제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게 되면 본연의 역할인 중장기 정책 설계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며 "금융위는 긴 호흡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 조직인데, 매년 반복되는 조사나 제재 이슈에 매몰될 경우 핵심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