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피' 명과 암…반도체株가 키운 기대감, 동시에 커진 하락장 변동성
입력 26.01.12 07:00
반도체 '200조 이익' 기대가 연 상단…동시에 높아진 변동성 기준점
지수는 신고가나 수익은 소수 편중…"코스피 랠리 구조적 한계 보여"
운용업계, "코스피 5000보다 중요한 건 변동성 구간에서 수급 이동"
  •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이 연초 4500선을 넘어서며 증권가에는 '코스피 5000'을 향한 추가 랠리 기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실적 회복과 정부 정책·유동성 환경 변화가 맞물릴 경우 '오천피'도 더 이상 과도한 낙관은 아니라는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같은 기대가 동시에 시장의 취약 지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업계에서는 지수 상단 논리보다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를 더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지수가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느냐보다, 기대가 한쪽으로 쏠린 국면에서 조정이 발생할 경우 어떤 형태로 흔들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판단이다.

    증권가의 '2026년 강세장론'의 출발점은 비교적 명확하다는 평가다. 금리 인하 국면 진입과 정부의 재정 확대 기조를 하나의 유동성 사이클로 묶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배당 확대 등 자본시장 정상화 정책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다. 여기에 반도체 업황 회복과 실적 개선이 더해지면 '코스피 5000'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현재 시장에서 제시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는 최대 200조원 수준이다. 반도체 대장주 두 곳이 코스피 전체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는 구조인 만큼, 이익 가시성만 놓고 보면 지수 상단을 끌어올릴 동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외국인 수급이 대형주와 실적 가시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도 이런 논리를 뒷받침한다.

    물론 이 같은 논리가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분석도 아직 적지 않다. 200조원이라는 숫자는 지수 하단을 지지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기대치가 높아질수록 실적에 대한 시장의 기준도 함께 높아진다. 반도체 업황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다소 늦어지거나 가격·수요·투자 사이클이 어긋나기 시작한다면, 특정 업종의 조정이 지수 전반의 변동성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실제로 2024년 국내 증시의 흐름이 이런 우려와 비슷했다. 상반기 크게 높아졌던 예상 실적 눈높이가 급격히 조정을 받으며 증시 역시 약세를 보였다. 이 와중에 삼성전자 주가 역시 한때 5만원이 무너지는 '수모'를 겪었다. 2023년에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크게 높아졌던 이익 전망치가 빠르게 하향 조정되며 증시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코스피 지수는 75%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집중화'의 우려가 제기됐다. 시가총액 증가분의 약 절반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서 발생한 것이다. 두 종목을 제외할 경우 코스피 수익률은 76%에서 39% 수준으로 크게 낮아진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체감 수익률이 제한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수가 오르면 대부분의 종목이 함께 오른다'는 과거의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운용업계선 올해도 이런 편중 구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반도체와 AI라는 큰 테마 안에서도 실제로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 주가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반도체 섹터 내부에서도 메모리 대형주와 비메모리·소부장 간 흐름이 갈라졌던 지난해의 모습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대가 높아진 만큼 실적 확인 과정에서의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근 1개월간 상장지수펀드(ETF) 자금 유입 상위권을 보면, 코스피 지수 전체를 추종하는 상품보다는 반도체 섹터 ETF, 미국 대표지수 ETF, 단기금리·머니마켓 등 현금성 상품으로 자금이 분산되는 모습이 뚜렷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반도체TOP10 ETF와 미국 S&P500·나스닥100 ETF가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금융채·CD금리·머니마켓 ETF로도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 국내 지수 전반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기보다는, 증시 상승 기대와 변동성 경계를 동시에 반영한 선택적 포지셔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책 변수에 대한 경계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 일각에서 금융투자소득세 재논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투자업계에서는 6월 지방선거 이후 관련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시장에 반영된 변수는 아니지만, 지수 기대가 높아진 국면에서는 정책 불확실성 자체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반도체 대장 기업들의 200조원 이익 전망은 지수 상단을 설명하는 데 가장 강력한 논리지만, 동시에 시장의 기준점을 상당히 높여 놓은 숫자이기도 하다"며 "실적이 확인되는 구간과 그렇지 않은 구간에서 변동성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운용업계 고위 관계자도 "당분간 반도체 주도 구조는 유지되겠지만, 상승이 특정 업종에만 머문다면 지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실무 현장에서는 '오천피'라는 숫자보다 상·하방 변동 폭과 정책·이벤트에 따른 국면 전환을 더 촘촘히 관리하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