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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자본 전략이 분기점을 맞았다. 물류 인프라에 쏟아붓던 자금을 처음으로 회수 국면으로 돌리려던 시도가 규제와 시장의 벽에 부딪히면서다. 15년간 물류센터를 직접 소유하며 배송 인프라 구축 전략을 고수해온 쿠팡이 처음으로 꺼내 든 대규모 자산 유동화 카드는, 아직 시장의 동의를 얻지 못한 모습이다.
최근 쿠팡의 물류센터 유동화 작업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를 넘어, 쿠팡 자본 전략 전환의 시험대였다. 리츠를 설립해 물류센터를 세일즈앤리스백(매각 후 재임차) 방식으로 넘기겠다는 구상이었다. 공격적 투자 국면에서 벗어나, 축적된 물류자산을 현금화해 재무 여력을 확보하겠다는 첫 시도였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계약 구조 점검과 기관투자가들의 냉담한 반응이 겹치면서, 쿠팡의 ‘현금화 실험’은 예상보다 이른 파고를 맞닥뜨리게 됐다.
쿠팡은 2010년 창업 이후 한국에서 이처럼 대규모 자산 회수를 시도한 적이 없었다. 설립 이후 10년 넘도록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등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국내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2021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통해서도 45억달러(약 5조원)를 조달했다. 2023년까지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물류센터를 구축하며 투입한 자금만 6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처럼 물류 인프라를 직접 소유하며 성장해온 쿠팡이 물류센터 유동화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려는 것은 뚜렷한 전략 변화로 읽힌다. 그간 부지를 직접 보유하며 핵심 물류 거점과 배송 인프라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리츠 등 금융 비히클을 활용해 자산을 매각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현금을 수익성 제고와 타 사업 재원으로 활용함으로써 자본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 전략을 두고 “아마존이 먼저 택한 모델을 따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마존 역시 초기에는 물류센터를 직접 확보해 네트워크를 구축했지만, 이후에는 장기 임차와 리스 중심 구조로 전환했다. 물류 경쟁력은 유지하되, 자산 소유에 따른 자본 부담은 외부로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실제 아마존은 초창기 부지를 직접 매입하고 물류센터를 개발하며 공간 활용 방식, 설계, 입지까지 철저히 통제하는 전략으로 거대한 유통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현재는 리스를 통해 단기적·계절적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구조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팬데믹 기간 급증했던 배송 수요가 이후 정상화되면서, 고정 자산 부담을 줄일 필요성이 커진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아마존은 1200개가 넘는 물류창고 가운데 약 40%만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핵심 허브 역할을 하는 거점 외에는 임대차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아마존은 굳이 모든 물류센터를 직접 소유하기보다, 원하는 입지와 조건을 제시한 뒤 그에 맞춰 시설이 조성되면 임차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며 “배송 인프라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된 데다, 물류센터 시장에서 워낙 우량 임차인으로 평가받는 만큼 소유보다는 임대차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차라리 그 비용을 다른 투자에 활용하는 편이 자본 효율 측면에서 훨씬 낫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쿠팡 역시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배송 인프라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황에서 자금을 물류센터에 묶어두기보다는, 다른 성장 기회나 전략적 투자에 활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물류센터 유동화 역시 자산 매각 그 자체보다, 자본 배분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는 해석이다.
쿠팡 물류센터를 편입하는 알파리츠가 쿠팡 계열사가 아닌 점도 이 같은 전략과 맞닿아 있다. 쿠팡은 리츠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분율은 9%에 그친다. 내부 보유가 아닌 외부 리츠를 통해 자산을 넘기고, 쿠팡은 임차인으로 남는 구조를 택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거래는 약 1조원 규모로 시작되며, 성과에 따라 추가 유동화 가능성도 열려 있었다.
다만 이 전략의 전제 조건이었던 리츠 영업인가 절차는 이미 제동이 걸린 상태다.
쿠팡은 지난해 12월 22일 알파씨엘리츠운용을 앞세워 ‘알파씨엘제1호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리츠)’에 대한 영업인가를 국토교통부에 신청했다. 부동산투자회사법상 국토부는 신청서 접수 후 20영업일 이내 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국토부는 최근 해당 신청 서류를 운용사 측에 되돌려 보내고, 리츠가 인수하려는 쿠팡 물류 자산의 사업성과 운용 계획 등에 대한 자료 보완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산의 사업 구조와 운용 방식 등을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며 “관련 자료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보완 요청이 이뤄질 경우, 인가 심사 기간은 20영업일 산정에서 제외된다. 업계에서는 국토부가 보완 절차를 반복할 경우 인가 시점이 사실상 상당 기간 지연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번 물류자산 유동화 거래 역시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쿠팡이 회원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정부 및 정치권과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 리츠 영업인가 심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지난해 11월 3370만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정부는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쿠팡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쿠팡의 자료 제출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최근에는 정부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긴장감이 높아진 상태다.
국토부 역시 이러한 정부 전반의 기조와 크게 다를 수 없다는 관측이다. 홍지선 국토부 2차관은 취임 후 첫 공식 행보로 경기 광주 곤지암 쿠팡 물류센터를 직접 방문해 시설과 근로 여건을 점검했다. 홍 차관은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법령에 따라 엄중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히며 강경한 메시지를 냈다. 부처 안팎에서는 현 시점에서 쿠팡을 대상으로 보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같은 상황은 쿠팡의 물류자산 유동화 전략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토부가 리츠 영업인가 심사 과정에서 물류센터 매각 구조와 운영 실태를 함께 들여다볼 경우, 거래 일정이 지연되거나 구조 수정이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시장 반응 역시 미묘하다. 일부 지방 물류센터가 포함돼 있어, 쿠팡이 임차를 종료할 경우 대체 임차인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임차 계약을 중도 해지하더라도 위약벌 조항이 사실상 없는 구조로 알려지면서, 매수자와 투자자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투자자인 공제회와 연기금은 정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쿠팡이 각종 이슈로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현 상황 자체가 투자 판단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기류도 읽힌다. 한 주요 공제회 관계자는 “현재 투자를 검토하던 기관들도 당분간은 관망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쿠팡이 구상하던 물류자산 현금화 전략은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자금을 회수해 다른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려던 구상 역시 일부 지연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유동화 시도는 쿠팡 자본 전략이 투자 중심 국면에서 회수·관리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라고 말했다.
취재노트
15년 투자 일변도 뒤 첫 유동화 카드
아마존식 모델 따르려던 쿠팡의 선택
규제·시장 반응에 속도 조절 불가피
자본 전략 전환, 현실성 검증 국면
15년 투자 일변도 뒤 첫 유동화 카드
아마존식 모델 따르려던 쿠팡의 선택
규제·시장 반응에 속도 조절 불가피
자본 전략 전환, 현실성 검증 국면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1월 1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