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확산 속 해외 액티브 위탁 '존재 이유' 재검증 나선 연기금들
입력 26.01.13 07:00
빅테크 주도 장세가 드러낸 액티브 위탁의 딜레마
ETF로 가능한 전략, 굳이 비싼 위탁 필요한가 의문
1조원 맡겨도 1억원 안팎…보수 인하 경쟁의 역설
사라지기보다 재편 무게…액티브 역할 재정의 시점
  • 해외 주식 위탁시장이 시험대에 올랐다. ETF와 팩터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연기금 내부에서 '비싼 해외 액티브 위탁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본격화하고 있다. 작년 글로벌 증시가 강세를 보였음에도 성과가 소수 대형 기술주에 집중되자, 전통 액티브 위탁의 효율성과 설명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는 평가다.

    작년 글로벌 주식시장의 특징은 수익의 편중이었다. 미국 증시는 상승했지만, 성과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M7)'으로 불리는 초대형 기술주에 집중됐다. M7은 지난해 두 자릿수(21%) 상승률을 기록하며 미국 증시 전반의 흐름을 주도했지만, 그 외 종목들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지수 상승과 체감 성과 사이의 괴리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전통 액티브 위탁이 구조적으로 M7을 시장만큼 싣기 어렵다는 점이다. 운용 철학상 밸류·퀄리티·분산을 강조하거나, 특정 종목 편중을 경계하는 전략이 많다 보니 '시장 베타'가 빅테크로 기울 때 상대성과가 흔들리기 쉽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작년 해외 주식은 절대 수익률만 보면 나쁘지 않았지만, 상대 성과 측면에서는 액티브 위탁이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이었다"라며 "운용 철학상 특정 종목 쏠림을 경계하다 보니 M7 같은 초대형 기술주를 시장만큼 담기 어렵고, 이런 환경에서는 전통 액티브 전략이 구조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환경 변화는 ETF의 급성장을 통해 더욱 선명해졌다. 글로벌 시장에는 수천 개의 ETF가 상장돼 있고, 빅테크 중심 노출부터 팩터·섹터·전략형 상품까지 대부분의 투자 아이디어를 저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다. 연기금 입장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수익 구조를 훨씬 낮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다.

    위탁사 선정 과정에서 운용사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점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키운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 연기금 해외주식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서는 일부 운용사들은 운용보수를 1bp(0.01%포인트) 미만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조원을 운용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운용보수가 1억원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이는 겉으로는 연기금에 유리해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수수료가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리서치 인력과 운용 인프라 투입이 위축되고, 이는 결국 운용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또 다른 연기금 관계자는 "기관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싼 계약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운용"이라며 "보수 경쟁이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액티브 위탁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갉아먹는 역설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비용 절감이 목적이라면, 애초에 ETF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는 해외 액티브 위탁이 곧바로 사라질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역할과 형식이 바뀔 가능성에는 무게를 둔다. 지수 추종이 가능한 대형주 코어 영역은 ETF가 대체하고, 액티브는 특정 섹터·테마, 비효율이 남아 있는 시장, 혹은 리스크 관리와 조합 설계 같은 영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액티브 ETF나 ETF 조합형 운용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연기금의 자산배분 원칙을 고려하더라도, 급작스러운 변화는 힘들다. 해외 주식 비중은 중장기 수익률과 분산 효과를 전제로 설정된 만큼, 단기 성과만으로 위탁 구조를 전면 수정하기에는 제약이 크다. 다만 '어디에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맡길 것인가'를 둘러싼 내부 검증은 이전보다 훨씬 촘촘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기관투자가(LP) 관계자는 "해외 액티브 위탁에 대한 질문은 '성과가 나쁘다'가 아니라 '왜 이 전략이어야 하는가'로 옮겨가고 있다"라며 "ETF로 구현 가능한 영역과 액티브가 개입해야 할 영역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