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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의결권 자문시장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자문기관의 행위에 대한 검증 및 규제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미국 최대 투자은행(IB) JP모건체이스는 의결권 자문사와의 모든 관계를 절연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와 대형 투자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10여년간 글로벌 투자시장의 화두였던 ESG, 즉 환경과 사회 그리고 거버넌스를 중점으로 한 투자에 대한 실효성을 다시금 검증하게 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Protecting American Investors From Foreign-Owned and Politically Motivated Proxy Advisors. 2025년 12월11일)은 특정 자문사들의 미국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다.
행정명령에 따르면, 전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은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Inc)와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 & Co., LLC) 등 2곳이 약 90%를 장악하고 있는데, 해당 자문사들이 ▲주주제안 ▲이사회 구성 ▲임원 보수 ▲지배구조 문제 등 미국 자본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의결권 자문사들이 다양성(diversity)과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그리고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정치적인 의제를 투자자들의 수익보다 우선시하면서 막대한 권력을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SEC(증권거래위원회)에 의결권 자문사와 관련한 모든 규정을 검토함과 동시에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환경, 사회, 거버넌스 정책과 관련된 규칙과 지침 등을 수정·폐지를 고려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법무장관과 협의해 반독점 조사 진행 여부를 검토할 것을 명시하기도 했다.
의결권 자문사들을 향한 미국 정부의 고강도 규제는 자문기관들의 기업 및 투자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행정명령이 발표되고 약 3주가 지난 시점,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는 보유 주식의 주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인 인공지능(AI) 모델(프록시 IQ)을 활용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에만 수천개에 달하는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결정을 외부 기관이 아닌 자체 플랫폼을 활용하기로 한 것인데, 제한된 인력만으론 사실상 불가능했던 업무를 AI가 대체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JP모건 CEO는 이미 지난해에도 주주서한을 통해 의결권 자문사들을 비판한 전례가 있다.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머스크(Elon Musk) 역시 2024년, 2025년 보상안에 반대표 행사를 권유했던 양대 자문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의 친(親) 기업정책과 자본시장을 대하는 우호적인 태도를 증명했단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미국의 조치는 전세계 기업들은 물론 이들을 상대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투자자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자문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의결권 자문사들의 역할이 위축돼 의안을 판단할 기준점이 모호해 진다면, 기업과 대주주 그리고 투자자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선 의결권 자문사를 표적으로 삼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미국의 분위기와는 달리 오히려 당분간 자문사의 역할과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대표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은 ISS의 권고안을 의결권 행사에 참고한다. 국내 기관 및 기업들은 글래스루이스, 그리고 토종 자문사인 한국ESG기준원(KCGS), 한국ESG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최근 수년 간 개별 기업들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선 기관 및 일반 투자자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주권익을 앞세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득세했고, 국민연금과 기관투자가들은 ESG란 대명제와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를 명분으로 기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중요한 경영 판단에 대한 배경, 특히 주총 의안 상정의 근거가 반드시 필요한 기업과 오너들이 자문사들에 의존하는 경향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과 대척점(?)에 선 일부 투자자들 역시 자문사들의 권고안을 앞세워 공세를 펼치는 모습이 반복됐다.
이해관계가 많지 않은 기관들, 의안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사실상 대세(?)에 지장없는 일반 기관투자자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자문사에 기댔다. 대형 자산운용사라 할지라도 실무자 한 명 당 수백 건에 달하는 포트폴리오 기업의 의안을 분석하고 일일이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ESG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에 편승하고, 수탁자책임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야했는데, 이런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의결권 자문사였다. 물론 기관들 입장에선 자의적인 판단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지기보단, 수동적이지만 권고안에 따름으로써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줄줄이 상정됐고 집중투표제 및 전자투표제 도입 등이 재계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주주권 보호, 권력과 자본에 대한 집중을 견제하고 이사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법안들로 인해 기업을 향한 외부 공세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반대로 경영권을 지켜야하는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단 평가가 나온다. 비재무적 투자에 비교적 무게를 싣고 있는 현정부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기업과 자본가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단 지적도 무시할 순 없다.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는 1월. 이미 개별 기업 IR 담당자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정관변경, 이사진 선임, 보수 책정 등 민감한 안건들을 잡음없이 통과시키기 위해 주요 자문사들에 접촉하는 모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자문사의 개별적인 접촉이 권고안의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계량하긴 어렵다. 다만 일반 투자자들보다 자문사들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기업들은 보다 유리한 결과 값이 도출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을 향한 트럼프 행정부의 직격을 단순히 미국에 기반한 몇몇 거대 자본가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JP모건과 같이 앞으로 의결권 자문사를 아예 패싱할 기관들이 늘어날진 미지수이지만, 이미 거대막강한 권력으로 부상한 의결권 자문사들에 대한 재평가의 시간이 다가왔단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과거 수년 간 ESG투자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 또 실효성에 의구심을 가진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ESG 무용론이 확산과 함께 국내 자문시장에도 상당한 파급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취재노트
美 트럼프, 행정명령으로 자문사 직격
JP모건 자문사 배제하고 AI로 대체
親 기업 정책에, 힘 실리는 ESG 무용론
美 트럼프, 행정명령으로 자문사 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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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 기업 정책에, 힘 실리는 ESG 무용론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6년 01월 11일 07:00 게재